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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전쟁 국군의 첫 승리 화령장전투···매복·기습으로 북한군 격퇴[김정욱의 밀톡]

지역주민 엄봉림이 국군에 북한군 동선 알려

2차례 치러진 화령장전투, 모두 국군의 대승

지난해 10월 16일 열린 화령장지구전투 전승기념행사에서 육구 50사단 장병들이 화령장전투의 승리를 재연하고 있다. /사진제공=육군




6·26전쟁 초기 당시 경북 상주시 화서면 일대에서 벌어진 ‘화령장전투’는 국군이 처음으로 승리를 거둔 전투다. 현재 화서면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곳은 5일 장이 유명해 장터의 의미로 ‘화령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1950년 7월 17일 국군 17연대가 북한군 15사단을 크게 격퇴하며 대승을 거운 화령장전투는 전세를 역전시키는 발판이 됐다. 이 전투의 승리로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키고 낙동강 전선을 정비할 수 있게 됐다.

화령장 전투가 치러진 곳의 지세는 해발고도 700m 이상의 고지를 두른 계곡길이었다. 이 때문에 북한군은 국군이 제대로 방비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1950년 7월 10일 충북 음성을 점령한 북한군 15사단은 45연대와 48연대 병력을 상주로 이동시키려고 했으며, 그 길목이 화령장이다.

당시 북한군은 치밀한 계획을 짜고 병력을 이동시켰지만 국군은 갑자기 움직여야 해 여러 면에서 열세였다. 육군본부는 7월 17일 자정 보은에 있던 17연대를 문경으로 이동시키려고 했다. 육군본부 직할부대인 17연대는 전쟁 초기 옹진반도를 지키다 인천·군산·평택·대전을 거치며 전선의 소방수 역할을 하고 있었다.

7월 17일 아침 화령장을 지나던 17연대 1대대의 트럭을 지역주민 엄봉림씨가 막아섰다. 엄씨는 군국에게 “화령장 계곡길을 따라 북한군이 상주로 이동하고 있다”는 첩보를 전했다.

이에 1대대장은 엄씨와 함께 화서면 경찰지서로 갔고, 경찰과 동네 청년들은 첩보조를 구성해 엄씨의 제보 내용을 확인했다.

이때 상주 화서면 상곡리에서 자전거를 탄 북한군 전령이 생포됐다. 이 북한군은 ‘인민군 15사단 48연대 병력이 상주로 접근 중’이라는 내용의 통신문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정황을 확인한 17연대 1대대는 화령장 계곡 3부 능선에 각 중대를 매복시키고 적을 기다렸다.

매복에 들어 간지 2시간 후 북한군은 국군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송계초등학교 교정에 짐을 풀고 저녁 취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북한군이 저녁 배식을 시작할 무렵인 오후 7시 30분 갑자기 국군의 공격이 시작됐다.

일방적인 국군의 기습은 1시간 가량 계속 됐고 국군은 북한군이 후퇴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해가 완전히 저물때까지 화기의 불을 계속 뿜어댔다.

육군 관계자는 “7월 18일 전투결과를 확인해 보니 국군은 250여명의 적을 사살하고 박격포 20문과 대전차포 7문을 노획했다”며 “화령장전투의 대승은 마을 주민의 신고와 대대장의 신속한 판단이 합쳐진 민·군이 합동으로 이뤄낸 승리다”고 설명했다.

경북 상주시 화서면 상현리에 있는 화령장지구전적비. 이 전적비는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다. /사진제공=육군




7월 18일 새벽 17연대 2대대와 3대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1대대의 매복현장을 둘러본 김희준 17연대장(중령)은 이 지역으로 오는 북한군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북쪽을 중심으로 한 수색을 지시했다.

수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17연대 수색중대는 북한군 전령 2명을 생포했다. 이 전령들은 ‘48연대와 45연대가 만나 김천으로 진격하라’는 북한군 15사단장의 명령서를 들고 있었다.

북한군은 화령장에서 선두 병력들이 괴멸한 것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17연대는 1대대가 매복했던 계곡보다 조금 더 북쪽으로 2대대를 매복시키고 적을 기다렸다.

7월 21일 오전 5시 30분, 매복에 들어간 지 사흘이 지났다. 2대대의 진지 앞으로 정체불명의 부대가 모습을 보였다. 적군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어 곧 바로 공격을 하지 못한 2대대는 정체불명의 부대에 대해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 부대는 바퀴달린 기관총 등 소련(러시아)제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송호림 2대대장(소령)은 정체불명의 부대가 북한군임을 확인하고 기습공격을 지시했다. 오전 내내 진행된 전투에서 국군은 북한군 356명을 사살하고 박격포 16문, 대전차포 2문을 노획하는 큰 성과를 거뒀다.

화령장전적지에 있는 무공수훈자공적비. /사진제공=육군


화령장전투에서 두 차례 승리를 거둠에 따라 17연대는 연대장 이하 모든 장병들이 1계급씩 특진되는 영예를 누렸다. 육군 관계자는 “화령장전투의 대승으로 상주를 거쳐 낙동강으로 향하던 북한군의 전투력은 바닥으로 떨어졌다”며 “국군은 두 달 뒤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지기 전까지 전선을 지탱할 시간을 벌게 됐다”고 말했다.

육군 50사단과 상주시는 매년 10월 화령장지구전투 전승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지난해에는 10월 16일 행사가 열렸고, 올해는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행사를 못할 수 있다.

현재 화령장전투가 벌어진 곳은 그날의 전투 흔적은 사라지고 평온함이 흐르고 있다. 국군 17연대 1대대가 승리를 거둔 송계초등학교 터에는 상주시가 조성한 ‘화령전승기념관’이 있다. 그 앞마당에는 170년된 느티나무가 70년전 화령장을 지켜낸 전쟁영웅들처럼 듬직하게 서 있다.
/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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