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 올림픽 당시 한국 선수들이 타는 봅슬레이 썰매 앞 겉면에는 붓글씨처럼 쓰여진 ‘대한민국’ 글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다. 보고만 있어도 날렵하면서도 힘이 넘쳐난다. 초스피드 경기인 봅슬레이에서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도록 기원하는 염원이 담겨 있는 듯 하다.
이 글자를 쓴 주인공은 사회적 기업 ‘디귿’을 운영하는 김두연(사진) 대표다. 김 대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캘리그래피다. 캘리그래피는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을 뜻하지만 머그컵이나 수제도장 등에 손글씨로 새겨 예술적인 작품을 만드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디귿은 인지도가 낮은 사회적 기업이지만 아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아는 사회적 기업이다.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싸이, 류현진 선수, 빈민들에게 담보 없이 소액 대출을 제공해 빈곤 퇴치에 이바지해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 등에게 김 대표의 캘리그래피 작품이 전달될 정도다. 뿐만 아니라 김 대표는 홀트아동복지회와 손잡고 해외로 입양을 가는 아기들에게 수제 도장을 만들어 주고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재능 기부 형식으로 서예 수업도 해 주고 있다. 15일 본지와 만난 김 대표는 “이름은 누구에게나 정체성을 의미하는데 비록 입양을 가지만 정체성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홀트와 이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교도소에서 수업을 한다는 게 처음에는 두려웠다”면서도 “막상 (수감자를) 만나보니 그렇게 무서운 분들도 아니고, 좋은 글을 쓰면서 마음을 수양하려는 노력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김 대표에게도 고민은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로 사회적 기업들이 만든 제품들의 판로가 더 막혀서다. 사회적 기업들은 매출이 늘어나면 늘어난 대로 사회환원을 그만큼 많이 하게 되는 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사회환원 활동도 줄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코로나 19로 인해 오프라인 수업과 행사 등이 모두 취소돼 매출이 반토막 났다”며 “공공기관에서 중소기업 제품을 의무적으로 구매하듯 사회적 기업 제품도 의무적으로 구매해 주는 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에서 의무 구입을 해주면 버틸 여력이 생기지만 이마저 어려우면 문을 닫는 사회적 기업들이 늘 것이라는 지적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기업들 역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셈이다.
김 대표는 “사회적 기업이 지속 가능하기 위한 생태 조건을 조성해 달라”고 호소했다. 사회적 기업 자체가 영세한 데다 코로나19로 더 어려워지면서 정부의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서예 작가로 활동하다가 사회적 기업을 시작했다. 기초 지식이 없다 보니 사업계획서를 쓰는 방법도 몰라 ‘맨땅에 헤딩’도 많이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는 “나 같은 아마추어 창업자를 위해 노무나 회계 등의 전문적인 경영수업을 위한 지원도 해 달라”고 덧붙였다. 그는 헤어지면서 “모든 것이 디지털로 변해가는 요즘이지만 글씨는 특히 ‘아날로그적 정서’를 자극하는 매개로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상품이어서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성이 없는 컴퓨터 글씨보다는 개성이 드러난 캘리그래피가 훨씬 더 고급스러워 보이죠”라는 말을 건넨 김 대표는 호탕하게 웃으며 배웅을 했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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