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가 대한항공(003490) 기내식·기내판매(면세점) 사업부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대한항공 노조의 반발이 또 다른 변수로 떠올랐다. 대한항공 노조는 오는 16일 서울 강서구 본사 앞에서 매각 반대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사실 PEF가 국내 기업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노조가 반발하는 것은 일종의 ‘통과의례’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번 딜은 산업은행이 관여한 정부 주도형 구조조정 딜이라는 점에서 노조의 목소리를 마냥 무시하기도 어렵다는 게 한앤컴퍼니의 고민이다. 한앤컴퍼니는 지난해 롯데카드 인수를 목전에 둔 상태에서 엉뚱한 KT 노조의 경영진 고소·고발에 휘말려 끝내 인수를 포기해야 했던 아픈 경험도 가지고 있다. 당시에는 금융회사의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도마에 올랐던 터라 이번 인수 건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친(親) 노조 성향 정부 하에서 어느 방향으로 불똥이 튈지 예측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한앤컴퍼니가 노조 설득을 위해 제시할 사업부 성장 청사진이 딜의 성패를 가를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볼트온 전략으로 덩치 키우기 나서
노조 반발과 별개로 시장에서는 한앤컴퍼니 인수 이후 기내식사업부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15일 “대한항공의 기내식 생산라인은 HMR 생산에 최적화돼 있어 한앤컴퍼니가 기내식 납품과 별도로 HMR 주문자상표부착(OEM) 시장에 진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대한항공 기내식 사업부가 이마트 ‘피코크’ 브랜드를 단 HMR 상품을 제조하는 길이 열린다는 의미다. 양사가 공식 부인하기는 했지만 한앤컴퍼니가 신세계푸드를 인수할 경우 브랜드와 생산라인을 모두 갖춰 수직계열화를 완성할 수도 있다. 한앤컴퍼니는 지난 2013년 웅진식품을 약 1,000억원에 인수한 뒤 대영식품, 동부팜가야 등 유사업종 회사를 잇달아 사들이는 이른바 ‘볼트온’ 전략으로 투자 5년 만에 2배가 넘는 매각 차익을 내기도 했다.
국내 한 대형 유통업체의 임원은 “대한항공 기내식 라인의 일일 생산능력이 8만식(食)에 달해 규모 면에서는 문제가 없다”면서도“다만 단가 측면에서는 저가식(食)을 생산해본 경험이 없어 정교한 실사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기내면세점도 한앤컴퍼니 인수 이후 시너지가 기대되는 사업부다. 한앤컴퍼니는 지난 2017년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옛 호텔현대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강릉과 경주, 전주 등에서 잇달아 호텔을 사들여 ‘라한호텔’ 체인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코로나 여파로 실적이 꺾였을 것으로 보이지만 호텔과 면세점 사업의 시너지는 충분하다는 게 시장 관측이다. 이에 앞서 호텔신라도 지난해 세계1위 기내면세사업자인 3식스티 지분 44%를 인수한 바 있다. 이 같은 확장 가능성을 감안하면 한앤컴퍼니 인수 후 고용안정성 등의 측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딜 구조도 변수 될 듯
대한항공 노조가 성장 가능성을 인정하더라도 매각까지 변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당장 양사는 두 사업부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을 두고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딜이 비교적 초기 단계인 양해각서(MOU) 체결 단계에서 외부에 노출되면서 대한항공이 오히려 여유를 갖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설령 매각에 실패하더라도 산은 등 채권단에 ‘할 말’이 생겼다는 것이다. 당초 시장에서는 사업부 매각 가격으로 1조원이 거론됐지만 실제로는 6,000억원 선이 적정 가격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매각 구조를 어떻게 짜느냐도 관건이다. HMR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더라도 결국 주력 매출처는 대한항공이 될 수밖에 없어서다. 잠재 매각 대상에 올랐던 마일리지사업부 등이 결국 리스트에서 빠진 데도 이같은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한앤컴퍼니가 우선 사업부를 인수하되 대한항공에 우선매수청구권을 주는 방안 등이 시장에서 거론된다. 이때 계약서에 기재될 세부 조항 등을 양 측이 치열한 협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한앤컴퍼니는 앞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와 손 잡고 한온시스템을 인수하는 과정에서도 한국타이어 측에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했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