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신사업 투자는 자회사 설립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주요 소송 대상은 이익을 내지 못하는 대기업 소속 자회사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게 되면 20년 이상 신약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성과를 얻은 SK바이오팜 같은 기업은 다시 나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16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상법개정안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정부 여당의 상법개정안에 대해 이같이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배구조 개선 및 소액 주주 권리 강화를 명분으로 대기업을 겨냥해 다중대표소송제·집중투표제 등을 도입하는 정부 여당의 상법개정안이 기업가치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임을 단언했다. 신 교수는 “사외이사뿐만 아니라 자본조달시장, 재무분석가, 상품시장, 정부·시민단체·소비자단체, 경영권시장 등 다양한 지배구조 견제 장치가 있기 때문에 기업은 스스로 혁신하고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며 “이런 기업 경영 활동을 도와주는 것이 법·제도의 역할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법·제도를 통해 특정 방향으로 기업 지배구조를 규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학계 전문가들은 정부 여당의 상법개정안이 초래할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현행 상법에 따라 최대주주 의결권이 3% 이내로 제한되는 가운데 상법 개정으로 이사 임기 상한이 3년에서 1년으로 단축, 집중투표제 도입이 이뤄지면 외국인·기관투자가들이 최대주주 경영권을 위협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지난 2000년대 초반 SK그룹 경영권을 외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이 위협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사 임기 단축 및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은 “이사 임기가 짧아지면 장기적 경영성과 개선보다는 재선임을 위한 단기간 내 가시적 경영성과에 치중하게 될 것”이라며 “집중투표제 도입은 기업경영권 방어 수단인 시차임기제 폐지로 이어지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차임기제는 이사진의 임기 분산을 통해 전체 이사진의 교체를 어렵게 해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 기능이 있는 제도로 평가된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선임되는 이사 수에 비례해 주주에게 의결권을 부여하며 득표 수에 따라 차례로 이사를 선임하게 된다. 이때 특정 후보자 한 명에게 대부분의 찬성표가 집중되면 나머지 후보는 극소수의 지지를 얻어도 선임될 수 있다. 이러한 집중투표제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시차임기제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게 권 원장의 설명이다. 따라서 결국 적은 지분을 보유한 기관·외국계투자가의 지지를 받는 이사 선임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대표성에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계에서도 상법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2017년 기준 중소기업 10곳 중 4곳(44.5%)은 대기업과 협력관계에 있고 그러한 중소기업은 매출액의 80.8%가 협력 대기업과 거래에서 나온 것으로 조사됐다”며 “정부 여당안대로 상법개정이 이뤄지면 경영권 침해 우려에 따른 대기업의 투자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대기업과 협력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에도 직간접적 영향이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기업 실적 악화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정부 여당이 상법 개정을 통해 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기업 경영 및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윤창현 미래통합당 의원은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기업이 투자할 수 있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정부 여당의 상법개정안은 기업 경영에 리스크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경훈기자 soco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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