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기술의 변화에 따라 게임 그래픽도 진화를 거듭해왔습니다. 도트와 미디 음으로 이뤄진 ‘갤러그(GALAGA)’ 같은 고전게임부터, 피부와 모공까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이’ 구현해 거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AAA급 게임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어릴 적의 향수 때문일까요, 도트만이 가진 매력 때문일까요. 2020년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는 오래된 IP(지적재산권)들의 복귀와 함께 ‘도트’가 다시 열풍입니다. 돌아온 도트 게임은 거칠지만 아기자기한 맛을 살린 오리지널 도트 게임과는 조금 다릅니다. 도트 만이 줄 수 있는 레트로한 느낌을 가져가되, 기존 도트 게임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완전히 새로 제작해 최신 게임의 기술력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일종의 ‘뉴트로’ 트렌드로 볼 수도 있겠네요.
대표적인 도트 게임 신작이 ‘바람의나라’를 기반으로 한 MMORPG ‘바람의나라: 연’입니다. 바람의나라는 모바일로 출시된 후 애플 앱스토어, 원스토어 최고매출 1위에 이어 구글 플레이 최고매출 3위를 기록하면서 사람들의 추억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난 15일 정식 출시 후 나흘 만의 기록입니다.
넥슨은 ‘바람의나라:연’ 도트 그래픽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태성 슈퍼캣 디렉터는 지난 8일 온라인 쇼케이스에서 “PC 바람의나라 도트 그래픽을 리터칭한 것이 아니라 원화를 보고 전부 새로 도트 작업을 했다”며 “시각적 측면에서 2D 감성 재현에 중점을 두고 그래픽 리마스터를 진행했다”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넥슨은 PC 게임 ‘바람의나라’에도 여름 업데이트 ‘빽 투더 바람’을 통해 구버전 그래픽 모드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와이드 해상도를 비롯해 신버전 그래픽을 업데이트 하면서 구버전 그래픽 모드 2가지를 추가한 겁니다. 배경과 NPC, 몬스터 등 그래픽 디자인을 1996년 출시 당시 추억 속 바람의나라 버전 그대로 살렸다는 후문입니다.
관련기사
카카오(035720)도 도트에 빠졌습니다. 지난 16일 카카오게임즈는 90년대풍 도트 그래픽이 특징인 탐험형 모바일 RPG ‘가디언 테일즈’를 국내 출시했습니다. ‘젤다의 전설’처럼 3040이 추억을 회상하며 플레이할 수 있는 레트로풍 게임입니다. 프로모션 영상에 주인공 캐릭터가 애니메이션에서 도트로 변신해 울상을 짓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카카오게임즈 관계자는 “90년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픽셀 형식의 도트 그래픽과 다양한 액션 구사가 가능한 조작키를 통해 이용자들이 ‘그 때 그 시절’의 게임을 추억하며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가디언 테일즈’는 올해 상반기 동남아, 캐나다 등 지역에서 진행한 소프트 론칭에서 탄탄한 스토리 라인과 귀여운 그래픽으로 호평을 받으며 기대를 모았습니다.
‘귀여운 리니지’를 표방한 엔씨소프트(036570) 신작 ‘트릭스터M(출시 예정)’도 2D 도트 그래픽 기반입니다. 2003년 출시된 MMORPG ‘트릭스터’를 계승해 탄탄한 팬층을 노렸습니다. 도트를 전면 도입해 원작 감성을 살리면서, 환경·전투 요소 등은 ‘리니지’에서 차용했다는 설명입니다.
이성구 엔트리브소프트 총괄 프로듀서는 출시 기자회견을 통해 “(트릭스터는) 당시에도 괜찮은 그래픽으로 평가 받았다”면서 “현 시대에서는 좀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도트 그래픽을 업그레이드 해 레트로하지만 최신 게임에 뒤지지 않는 좋은 그래픽을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도트 같은 저사양 그래픽 게임에 향수를 가진 세대 이후에도 인기가 계속될 수 있을까요. 스스로를 도트 게임 매니아라고 자칭하는 30대 회사원 A씨는 “한정된 그래픽 리소스 안에서 캐릭터를 표현하는 도트 만의 매력이 있다”며 “아무리 하드(하드디스크), 그래픽카드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도 2D 도트 게임은 계속해서 사랑받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일단 택시가 날고, 민간 기업이 유인 우주선을 쏘아올리는 2020년에도 도트가 대세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네요.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