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식생활과 설거지 습관을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던 삼성전자(005930)의 한국형 식기세척기가 핵심기술의 일부를 중국 가전업체 메이디에서 차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의 식(食)과 멋을 맞추다’라는 광고 문구로 이 제품을 홍보해온 삼성전자는 이제껏 해당 제품이 중국산이기는 해도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만들어졌을 뿐 핵심기술은 자사의 것이라고 설명해왔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삼성전자가 출시한 비스포크 식기세척기의 하단 세척날개는 메이디의 고급 가전라인인 콜모(COLMO)의 식기세척기에 들어간 하단 세척날개와 외관과 구동방식이 동일하다. 식기세척기의 세척날개는 펌프를 통해 만든 물살을 그릇으로 정교하게 쏴주는 역할을 하며 세척력을 좌우하는 핵심부품이다. 특히 비스포크 식기세척기의 하단 세척날개는 출시 당시 국내 시장에서는 생소한 ‘720도 세척’ 기능으로 입체 물살을 구현하며 한국인의 식습관에 맞춰졌다고 찬사를 받았다. 가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1990년대 초반 유럽·미국의 유명 식기세척기가 수입됐지만 공기에 붙은 밥풀을 씻어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소비자에게 외면받았다”며 “우리 식습관에 맞는 기술개발은 늘 업계의 고민이었고, 업체마다 하단 세척날개를 중심으로 세척력을 강화해나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핵심기술 개발 대신 중국 제조 협력사의 기술을 빌려 쓰는 빠른 길을 택했다. 비스포크 식기세척기의 제품 소개 홈페이지에는 360도로 돌아가는 2개의 세척날개가 반대로 회전하며 같은 수의 물줄기를 분사해 720도 세척을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하단 세척날개는 메이디 콜모에서 출시한 고급 식기세척기(COLMOCDB312)에 탑재된 하단 세척날개와 모양도 색상도 구동방식도 동일하다. 그도 그럴 것이 ‘720도 세척’의 바탕이 된 특허는 메이디가 보유한 독점적 기술이기 때문이다. 앞서 메이디는 2018년 8월과 2019년 3월 세척날개의 설계와 관련한 총 5건의 특허(CN201821397613·CN201821415644·CN201821410955 등)를 심사받고 있거나 이미 출원한 상태다. 출원된 특허는 오는 2028년까지 독점적 권리를 보장받는다. 또한 메이디는 지난해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19에서 ‘720도 세척’ 기술을 시연하기도 했다.
반면 삼성전자가 ‘720도 세척’을 구현하는 기술을 별도로 특허 출원 또는 등록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삼성전자 측에 이 기술과 관련한 특허번호를 요청했지만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삼성전자는 메이디의 하단날개 기술을 자사가 차용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전체 세척날개의 구조는 별도의 자체 개발 기술에 바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자사는 4단 날개로 입체 물살을 만드는 부품 중 일부인 하단 날개는 외부 소싱했지만 그 외 나머지 날개 구조와 세척 알고리즘은 그간의 노하우로 독자개발했다”며 “이외에도 내부 구조나 다양한 기능 등을 새롭게 적용해 명실상부 한국형 식기세척기에 걸맞은 성능과 디자인을 갖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가전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빠르게 성장하는 식기세척기 시장에 서둘러 뛰어들기 위해 개발보다는 기술을 빌려 쓰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가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메이디가 기술협력 통해 제품을 만들었다”며 “메이디는 단순 제조사라기보다 핵심기술을 제안하는 새로운 협력모델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국내 식기세척기 시장은 SK매직과 LG전자(066570)·삼성전자 등의 대기업과 쿠쿠·대우·휴비딕 등 중견업체가 함께 경쟁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국내 자체 공장에서 식기세척기를 제조하는 곳은 SK매직과 LG전자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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