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1호기 폐쇄 결정에 대한 감사와 관련해 감사원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불리한 쪽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의혹이 일자 청와대와 여권이 최재형 감사원장을 강하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감사원 관련 인사권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음을 강조했고 여당은 ‘사퇴’ ‘탄핵’까지 언급하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9일 청와대가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을 감사위원에 임명하려다 ‘친정부 인사’라는 이유로 최 원장이 거부했다는 일부 여권 인사의 주장과 언론 보도에 대해 “인사에 관련한 사안은 확인하지 않는다”면서도 “감사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사실관계에는 말을 아끼면서도 최 원장에게는 경고장을 날린 듯한 발언이다.
이날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여당 의원들은 최 원장을 잇따라 질타하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 원장이 지난 4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직권심문 과정에서 ‘대선에서 41%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과 감사위원에 추천된 김 전 차관을 거부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강하게 추궁했다. 신 의원은 “대선에 불복하는 반헌법적 발언”이라며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이 불편하고 맞지 않으면 사퇴하고 재야로 나가서 비판하든지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은 최 원장의 친인척이 보수 언론사와 국책 원자력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는 사실을 거론하며 “국민이 탄핵에 이를 사안인지 판단하겠지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소속의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최 원장의 답변 태도를 문제 삼으며 “지금 팔짱을 끼고 답변하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 원장에 대한 비판에는 민주당의 박범계·송기헌·소병철 의원 등도 가세했다.
최 원장은 이에 대해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은 공약이라는 주장에 ‘41% 지지율을 국민 대다수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한 게 전부”라며 “정치권의 눈치를 봤다는 비난은 피해야 한다는 게 우리 생각”이라고 해명했다. 감사위원 추천 논란에 관해서는 “임명권자와 협의해 결정하는 게 순리”라고 답해 문 대통령에게 결정권이 전적으로 있는 듯 강조한 청와대와 다소 다른 답변을 내놓았다.
한편 송갑석 민주당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청와대가) 어떤 사람을 추천했는지 모르겠지만 최 원장이 ‘친정부 인사이기 때문에 못 한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송 의원은 또 감사원의 조사를 받고 나온 사람들의 주장을 근거로 “(최 원장이) ‘너희들은 대통령이 시키면 무조건 다하는 사람들이냐’는 발언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최 원장이 거부한 인사가 김 전 차관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일단 “모른다”고 답했다.
송 의원은 23일에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최 원장이 ‘대선에서 41%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등 국정과제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고 비판했다. 최근 감사원의 조사를 받았다는 백 전 산업부 장관은 26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송 의원이) 최 원장이 한 발언이라고 소개한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최 원장의 현재 처지가 윤석열 검찰총장과 닮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취임 당시만 해도 여권 인사들의 찬사를 듣다가 정권에 반하는 모습을 보이자 순식간에 ‘문제 인사’로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과 보수 진영에서 그의 행동을 ‘소신’으로 간주해 평가하는 부분도 윤 총장과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 원장은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낸 법관 출신으로 2017년 말 문재인 정부 첫 감사원장에 임명됐다.
황규환 미래통합당 부대변인은 27일 논평에서 “독립성이 보장돼야 할 헌법기관인 감사원의 수장에 대해 상식적인 발언을 빌미로 아랫사람 다루듯 하려는 태도는 탈원전 정책 감사로 인한 불만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월성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 결정에 대한 타당성 감사 결과는 현재 예정 기한을 다섯 달 가까이 넘겼다. 감사원은 앞서 4월9일과 같은 달 10일·13일 잇따라 관련 감사위원회를 열어 감사보고서 발표에 대한 기대를 높였지만 결국 결론을 내리는 데는 실패했다.
/윤경환·김혜린·윤홍우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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