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기업 일반 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도입을 원칙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금산분리 원칙 후퇴 지적 등을 감안해 지분율과 투자 대상 조건을 걸어 관리할 계획이다. 재계와 벤처투자업계는 “벤처 생태계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제한 조건이 까다롭다는 의견을 내놨다.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제한 사항이 추가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제1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열어 ‘일반 지주사의 CVC 제한적 보유’ 추진 방안 등을 논의해 확정했다. 대기업의 CVC 소유는 대규모 자금 유입을 기대하는 벤처투자업계는 물론 신성장동력 확보에 나선 재계의 숙원이었다. 대규모 자금 동원력을 갖춘 대기업 소유 CVC가 펀드에 출자하고 그 자금이 투자에 목마른 벤처업계로 흘러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지주사 체제 대기업 37곳의 현금 자산은 25조원가량이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은 일반 지주회사가 벤처캐피털 같은 금융회사를 소유하는 것을 막고 있다. 금산분리 원칙에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지주사 체제인 롯데(롯데액셀러레이터)와 CJ(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 코오롱(코오롱인베스트먼트) 등은 지주사 체계 밖에 CVC를 두고 있고 SK(SK텔레콤벤처캐피탈)와 LG(LG테크놀로지벤처스)는 아예 해외법인 형태로 CVC를 보유하고 있다. 홍 경제부총리는 “벤처투자 확대와 선순환 생태계 구축, 우리 경제의 혁신성과 역동성 강화를 위해 CVC 소유를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표된 방안에 따르면 CVC는 대기업 지주사가 지분을 100% 보유한 완전 자회사로만 허용되고 부채비율은 자기자본의 200% 내외로 제한된다. 기존 벤처캐피털에 대한 부채비율 한도가 중기창업투자회사는 1,000%, 신기술사업금융업자는 900%인 것과 비교하면 크게 낮다.
총수 일가가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과 계열사,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에는 투자할 수 없다.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총수 일가가 직접 CVC 펀드에 출자하거나 금융 계열사 자금을 넣는 것도 금지된다. 대신 펀드 조성액의 40%까지는 외부 조달을 허용하기로 했다. 국내 벤처생태계 활성화 차원에서 해외 투자는 총자산의 20%로 제한했다. 산업계는 반기는 분위기지만 국회에 이미 총 8개의 관련 법안이 제출돼 있어 향후 논의 과정에서 제한 조건이 추가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는 연내 공정거래법 개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한편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하반기 소비 활성화를 위해 숙박·관광 등 8대 분야 소비쿠폰을 풀어 국민 1,800만명이 1조원 규모의 소비에 나서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지역사랑·온누리상품권 발행 규모도 당초 계획했던 9조원보다 많은 13조원으로 늘리고 내년에는 15조원 이상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1단계로 지방 이전을 마친 153개 공공기관이 지역 발전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내년 경영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세종=한재영·김우보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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