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020560) 매각이 결국 불발될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자금력을 갖춘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조만간 채권단 관리체제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PEF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금호산업은 지난 29일 HDC현대산업개발(294870)에 “오는 8월 12일 이후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공문을 전달했다. 거래 완료에 필요한 선행 요건이 이미 충족됐으므로 계약을 이행하라는 취지다. 이번 딜의 경우 거래 주도권이 사실상 산업은행에 있어 실효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언제든 계약 파기를 위한 절차적 ‘판’은 깔아둔 셈이다.
이와 관련해 HDC현산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아시아나를 인수하겠다는 의지는 지금도 변함이 없고 재실사를 통해 진정성 있는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번 입장 표명도 결국 계약 해제를 위한 시간 끌기가 아니냐는 시각이 여전히 우세하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산은의 입장을 다음주쯤 공식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HDC현산 측이 매각 조건 변경안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도 않으면서 재실사부터 요구하는 등 매각 지연 행위를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위기 상황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는데 사실상 ‘주인 없는 회사’가 돼버린 상황에서 어떤 경영자가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느냐”며 “시간만 끌다가 부실이 더 커지고 잠재적 원매자까지 사라지면 더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매각 무산 가능성이 커지면서 PEF들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설령 아시아나가 국유화 수순을 밟게 되더라도 이 과정에서 PEF의 투자 기회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아시아나 자회사의 분리매각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미 일부 국내 PEF들이 에어서울·에어부산(298690)·아시아나IDT(267850) 등을 묶어 5,000억원 안팎에 매입하는 방안을 금호산업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자회사 매각이 성사될 경우 아시아나는 당분간 운영 자금을 확보해 숨통을 트면서 동시에 재무구조도 개선해 원매자들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
아시아나를 통째로 PEF에 넘기는 방안도 있다. 산은이 일시적으로 아시아나를 관리하면서 일부 ‘헤어컷(채무탕감)’을 단행해 재무구조를 정상화한 뒤 PEF에 넘겨 자본투입 및 경영 효율화를 진행하고 이후 민간 주도 매각을 추진하는 구조다. 특혜논란이 걸림돌이 될 수 있지만 그동안 산은 체제로 들어온 많은 민간기업의 임직원들이 ‘모랄해저드’를 겪으면서 경쟁력이 후퇴한 점을 설득의 근거로 내세울 수 있다.
더불어 국적 항공사를 PEF가 보유하는 게 적절하냐는 논란도 남아있긴 하지만 지난해 매각 과정에서 대기업 전략적투자자(SI)를 확보하지 못했던 강성부펀드(KCGI)가 입찰에 참여한 전례도 있어 불가능한 시나리오만은 아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해외 기관투자자들이 주요 출자자(LP)로 있는 MBK파트너스나 한앤컴퍼니는 투자가 어렵고 IMM 프라이빗에쿼티(PE)나 KCGI 등이 다시 한 번 후보군으로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항공업의 반등폭 등이 변수이기는 하지만 SK, GS, 신세계 등 지난해 아시아나 인수를 검토했던 대기업들이 여전히 잠재 매수 후보자로 나설 수 있어 PEF로서도 해볼만한 딜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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