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에서 정한 대로 ‘5% 인상’을 하려고 해도 세입자가 거절하면 못 올린다고 합니다. ‘버티기’로 나오는 세입자와 재계약(계약갱신)을 거절하면 오히려 제가 과태료 대상이 된다고 하네요.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서울에서 임대사업을 하는 A씨는 최근 전월세상한제 도입과 관련해 국토교통부에 문의했다가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전세금을 5% 올리려는데 만약 임차인이 거절하면 재계약을 거부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변은 ‘재계약 거절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며 이를 이유로 재계약을 거절하면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였다. A씨는 “이럴 거면 대체 ‘5% 상한’은 뭐하러 정한 거냐”고 하소연했다. 충분한 사전 논의 및 검토 없이 시행된 ‘임대차 3법’의 후유증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혼선에 대해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집주인과 임차인이 이전보다 더 많은 협의를 하는 것은 제도 시행에 따른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입장이다.
◇‘5% 상한’ 허점에도 정부는 “자연스러운 일”=전월세상한제의 핵심인 ‘5% 룰’마저 벌써부터 허점이 드러날 정도로 부실한 상황이지만 정부는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전월세상한제로 이득을 보게 된 세입자가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리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는 분쟁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조속히 관련 해설서를 제작·배포하고 분쟁조정위원회를 확대·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히는 정도다.
이러는 동안 현장에서는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국토부가 임대차제도 관련 문의처로 소개한 서울시 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에 해당 사안을 문의하자 “이런 경우 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해결하라는 말밖에 할 게 없다”며 “문의는 많이 오는데 답변할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아 우리도 난처한 상황”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문제는 유일한 대응방안인 분쟁조정위도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현행 규정상 세입자가 분쟁조정위의 조정 절차를 거부하면 조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가까스로 조정안이 나오더라도 세입자가 거부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사실상 임차인·임대인의 상식적 판단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임대주택사업자들은 더 난리다. 이들은 민간임대주택특별법상 재계약 해지 사유에 ‘5% 범위 내로 임대료 증액을 요구했으나 임차인과 상호 협의가 안 될 경우’를 포함시켜달라는 청원을 내놓기도 했다.
◇허술한 제도에 곳곳 혼선…전문가 “졸속입법”=이 밖에도 졸속으로 시행된 임대차 3법에 따른 혼선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기존 임대차 거래 관행을 180도 뒤집는 제도를 시행하면서도 충분한 숙의를 거치지 않다 보니 현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
한 집주인은 “전월세 만기를 6개월 앞두고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해서 새로운 세입자를 알아보는 와중에 임차인이 만기를 앞두고 뒤늦게 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하면 이를 받아들여야 하느냐”며 “제대로 답변해주는 곳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세입자들 역시 고충이 크다. 임대료 인상 제한으로 집주인들이 예전보다 더욱 깐깐하게 집수리 비용 등을 청구하는 식으로 ‘손해보전’에 나설 경우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는 것이 한 예다.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제도가 시행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점을 법령에 담을 수는 없다”며 “분쟁조정위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보완이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졸속입법’이 시장의 불안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다양한 예외사항을 예상하지 못한 졸속입법”이라며 “당분간 혼선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진동영·권혁준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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