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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족은 우리가 알던 그 가족이 아니다

잊힌 근대화가 배운성展 29일까지

유명한 '가족도' 속 수수께끼 인물들

집주인 '백인기 가족'vs 화가 '배운성 가족'

영화'기생충'처럼...더부살이 화가식구인 듯

배운성 ‘가족도’, 140x200cm 캔버스에 유채. /사진제공=웅갤러리




배운성(1900~1978)이라는 화가가 있다. 김환기·이중섭·박수근 등의 근대화가에 비해 덜 알려진 인물이다. 배운성은 가난 때문에 얹혀살던 부잣집의 또래 아들과 함께 1920년대 초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고 1940년까지 베를린과 파리에서 활동한, 우리나라 최초로 유럽 미술계에서 상까지 받으며 이름을 알린 화가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급히 귀국하는 바람에 작품 대부분을 유럽에 두고 왔고, 홍익대 미술대학 초대 학장을 지냈지만 아내의 좌익활동 연루로 월북하는 바람에 우리 역사에서 지워지다시피 했다. 북한에서 평양미술학교 교수였고 최초의 김일성 초상판화를 제작했으며 조선미술박물관에 국가보존작으로 지정된 그림만 60점 이상일 정도로 위상이 높았으나 말년에 정권 눈밖에 나 신의주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배운성의 대표작이 ‘가족도’다. 화가 이름보다 그림이 더 유명하다.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사람만 17명에 강아지도 등장하는 근대기 가족 초상이다. 지난 2012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당시 문화재청은 우리나라 최초로 유럽에서 활동한 배운성의 업적과 함께 “우리나라 근대기의 실제 초상형식 그림으로 그려진 대가족 초상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매우 귀중한 가족도”이며 “당대의 주거와 복식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료”라는 점을 지정 이유로 밝혔다.

배운성 ‘모자를 쓴 자화상’ 1930년대, 54x54cm 캔버스에 유채. /사진제공=웅갤러리


그럼에도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다. 이 작품은 배운성이 서생으로 기숙하던 경성의 갑부 백인기의 집 마당과 대청을 배경으로 했기에 ‘백인기 가족’으로 알려져 왔다. 배운성은 그림 왼쪽에 흰 두루마기를 입고 구두를 신은 인물로 자신을 그려넣었다. ‘아테네학당’의 군상 속에 자화상을 넣은 라파엘로처럼 화가로서의 자부심이 엿보인다. 어린 손주를 안고 그림 가운데 주인공처럼 앉은 인물이 백인기의 모친이고, 그 뒤가 백인기 부부라는 게 작품 소장자 등의 주장이다. 하지만 그림이 발견된 이후 연구가 거듭되면서 인물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최근 연구논문 등은 이 그림이 백인기의 집을 배경으로 했을 뿐 등장인물은 배운성의 어머니와 가족들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때는 배운성이 남긴 2점의 ‘어머니 초상’ 속 인물과 ‘가족도’의 할머니가 흡사하다며 그림의 주인공이 배운성의 어머니라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어머니 초상’ 속 여인은 배운성의 모친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1930년대 프랑스에서 유학한 윤을수 신부가 어머니를 그리워해 배운성에게 사진을 주며 의뢰해 그린 윤을수 신부 어머니의 초상이었다. 배운성 가족이 불교 신자였는데 그림 속 어머니가 왜 성경과 묵주를 쥐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함께 풀렸다.

배운성이 그린 두 점의 ‘어머니의 초상’. 이 작품은 1930년대 프랑스에서 유학한 윤을수 신부의 어머니로 확인됐다. /조상인기자


배운성 ‘화가의 가족’ 1930년대, 43x55cm 판넬에 유채. /사진제공=웅갤러리


유럽에서 주목받던 1939년의 배운성이 의뢰받지도 않은 백인기 가족의 초상을 2m폭의 대작으로 그린 것도 의아한 대목이다. 배운성 연구자인 김복기 경기대 교수는 “배운성이 전쟁통에 유럽을 떠나올 때 긴박한 순간에도 챙겨들고 온 그림이 바로 자신의 어머니 초상화였고, 흑백사진으로 전하는 그 작품이 ‘가족도’ 중앙의 할머니와 일치한다”면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오랜 세월 떨어져 살아야했던 어머니와 4남 1녀의 형제자매들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림의 맨 오른쪽, 배운성의 대칭점에 노란 저고리를 입고 선 여성은 배운성의 여동생 ‘금자’라는 설명이다. 이는 배운성이 판넬에 그린 ‘화가의 가족’에 등장하는 여동생과 닮았으며, 그림 속 어머니도 ‘가족도’의 중앙 인물과 흡사하다.



비록 서생으로 더부살이했던 집이나, 당시 서울에서 손꼽히는 부잣집에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살고픈 작가적 상상이 담겼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특히 그림 왼편 방 안에 앉은 남성은 검은 배경에 입체감없이 묘사된 것이 꼭 영정사진처럼 보여 망자(亡者·죽은사람)로 보인다. 실제 이 그림이 제작된 1933~35년 이전에 배운성의 형이 작고했기에, 그의 형님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얹혀살던 집을 객식구들이 차지했다는 점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떠올리게도 한다.

반면 ‘백인기 가족’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조끼를 입고 대청마루에 앉은 남성이 배운성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고, 이후 조선축구단과 코리안재즈밴드 등을 이끈 당대 멋쟁이 백명곤이라고 강조한다.

배운성 ‘자화상(아뜰리에)’, 1930년대, 60.5x51cm 캔버스에 유채 /사진제공=웅갤러리


극과 극을 오간 영화 같은 삶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니다. 유럽에서 사라졌던 배운성의 그림 48점이 파리의 골동품상에서 뭉치째 나왔다. 불문학자이자 눈 밝은 컬렉터였던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이 이를 모조리 구입해 귀국했다. 지난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배운성’전에 선보인 이후 약 20년 만에 48점이 한 자리에서 전시됐다. 종로구 자하문로의 같은 건물에 있는 웅갤러리,본화랑,아트아리가 합심해 오는 29일까지 배운성 전시를 연다. 전시 주최측은 ‘가족도’를 ‘백인기가족’으로 소개하고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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