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에 ‘중화민족을 위한다(中華有爲·중화유위)’라는 뜻을 담은 중국 화웨이가 20세기 초반 중국 공산당이 시도했던 ‘자급자족’ 전략을 바탕으로 중화민족의 부흥을 이룰 수 있을까.
미국 제재로 각종 부품·소재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화웨이가 미국 기술이 들어가지 않은 제품 생산에 나서며 ‘차이나 굴기’에 힘을 준다. 화웨이가 올 2·4분기 자국 소비자들의 ‘밀어주기 소비’ 덕분에 사상 첫 글로벌 스마트폰 점유율 1위에 오른데다, 화웨이의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파트너인 중국 SMIC가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어 허황된 전략만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화웨이가 런정페이 회장이 강조하는 이른바 ‘늑대 경영(늑대의 민감한 후각·불굴의 진취성·팀플레이 정신을 본받자는 경영철학)’에 기반한 승부수를 던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6일 중국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화웨이는 중국 산시(山西)성의 혁명 성지에서 이름을 따온 자급자족 프로젝트 ‘난니완(南泥灣)’에 돌입했다. 중국은 1930년대 항일전쟁 당시 난니완에서 자급자족을 달성해 성공적인 항일 투쟁을 벌인바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 ‘난니완’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 또한 미국 경제 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자급자족 기반의 성장의지를 대내외적으로 표명하기 위해서다. 난니완 프로젝트에는 노트북, 스마트TV, 디스플레이 사업이 포함됐으며, 향후 화웨이의 대부분 주력 사업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화웨이가 오는 17일 공개하는 새 노트북 모델 또한 미국 기술에 의존한 부품이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화웨이는 지난해 미국 상무부의 거래제한 명단에 오른 뒤 독자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훙멍(하모니)을 발표하는 등 기술 자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5월 화웨이 거래처들이 미국 기술이 사용된 제품이나 소프트웨어를 화웨이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추가 제재안을 내놓은 바 있다. 실제 화웨이는 지난 5월부터 글로벌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에 반도체 생산주문을 중단했으며 다음달부터는 아예 거래를 끊는다.
업계에서는 화웨이의 다소 무모해 보이는 자급자족 전략이 어느정도 통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 근거가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약진이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화웨이는 올 2·4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5,580만대의 제품을 판매해 점유율 20.0%로 사상 첫 1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005930)는 5,420만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하며 19.5%의 점유율을 기록했으며, 애플은 3,760만대의 스마트폰 판매로 점유율 13.5%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화웨이의 이 같은 약진은 수량 기준 세계 1위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의 ‘화웨이 밀어주기’ 덕분이다. 화웨이는 올들어 중국 시장에서 50%에 가까운 점유율을 기록하며 자국 국민들의 ‘애국소비’ 덕분에 판매량이 급격히 늘었다. 반면 오포·비보·샤오미 등 중국 기업의 점유율은 그만큼 줄었다. 화웨이가 유럽·동남아·중남미 시장에서 삼성전자·LG전자 등에 점유율을 빼앗겼지만 이들 시장은 코로나19에 따른 ‘셧다운’ 등으로 올 상반기 중국 대비 전체 시장 규모가 줄었다. 중국을 제외한 여타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되는 만큼 화웨이의 이 같은 점유율 상승세는 올 하반기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화웨이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에서도 SMIC와 손잡고 자급화에 힘을 준다. 화웨이는 지금까지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이 설계한 AP를 TSMC에 위탁생산하는 방식으로 AP를 조달해 왔다. 다만 미국 제재로 TSMC와의 거래가 불가능해진 만큼 올 하반기 7나노까지 기술 업그레이드를 예고한 SMIC와 손잡고 AP 등 주요 반도체 생산에 나설 예정이다.
SMIC는 최근 베이징 경제기술개발구 관리위원회와 자본금 50억달러 규모의 합작법인을 세우고 베이징에 생산라인 2개를 건설할 예정이라고 밝히는 등 대규모 증설에 힘쓰고 있다. 1기 생산라인 건설에는 531억위안(약 9조원)의 자금이 투입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화웨이는 또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인 유니SOC를 통한 반도체 우회 생산도 계획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니SOC는 최근 하이실리콘의 반도체 설계 인력을 대거 채용했으며 현재 7나노급의 반도체 설계 능력을 갖추고 있다. 스티브 추 유니SOC 최고경영자(CEO)가 하이실리콘 최고전략책임자(CSO) 출신이라는 점 외에 에릭 조 마케팅 담당 부사장이 화웨이 출신이라는 점에서 양측간 물밑 협업이 더욱 강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메모리 반도체 또한 자국내에서 수급 가능할 전망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D램 시장에서는 CXMT가 연내 17나노급 D램을 양산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YMTC는 128단 낸드플래시 제품을 올 연말께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화웨이는 올 1·4분기 삼성전자 주요 매출처 5곳 명단에서 21개월만에 빠지는 등 글로벌 1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와의 거래를 줄이며 일찍이 자립화에 시동을 건 바 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디스플레이 부문에서는 세계 1위 액정표시장치(LCD) 업체인 BOE와 중국 1위 TV 업체인 TCL의 자회사 CSOT 등 자국 파트너사가 한층 다양해 충분한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IT 업계 관계자는 “세계 최대 반도체·스마트폰 수요처인 중국이 화웨이를 중심으로 자급자족 움직임을 강화할 경우 한국에게는 큰 위협이 된다”며 “미국의 중국 제재가 ‘차이나 반도체 굴기’를 좌절시킬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중국이 이를 우회해 자생력을 보다 강화할 경우 한국에겐 더욱 안좋은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이라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