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땅 속 이야기는 기원전 2100년경 수메르에서 쓰인 ‘길가메시 서사시’다. 길가메시의 하인 엔키두가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으러 하계(下界)로 내려갔다가 고생 끝에 풀려나는 이야기다. 엔키두는 비록 물건을 되찾지는 못했으나 ‘세상에 존재하지 못하고 사산된 내 아이들을 보았나?’라는 길가메시의 애절한 물음에 ‘보았다’고 답할 수 있었다.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 구조는 하계의 신 하데스로부터 사랑하는 에우리디케를 되찾아오려는 오르페우스, 유령이 된 아버지의 조언을 듣고자 황금가지의 보호 아래 떠난 아이네이아스 등 그리스·로마 문학을 비롯한 전 세계의 신화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신간 ‘언더랜드(Underland)’는 우리의 발밑 땅 속에 대한 이야기다. ‘마음의 산’ 등으로 유명한 자연작가인 저자는 산을 좇던 것에서 방향을 바꿔 지하 세계로 눈을 돌렸다. 그는 신화에 등장하는 하계와 어둠은 모순적이게도 ‘보기’ 위한 수단이고, 아래로 내려가는 하강은 오히려 ‘드러내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강조한다. 영어로 ‘이해하다(understand)’에는 ‘그것의 아래를 지나가 봐야 완벽하게 알 수 있다’는 오랜 의미가 담겨있다는 설명과 함께.
3만5,000년 전 사람이 짚었던 손자국이 남아있는 석회암 지역의 동굴, 6,000년 전 북유럽에서 출산하다 아들과 함께 사망한 모자의 유해가 있는 모래흙 속, 2,300년 전 지중해 섬에서 제작된 광나는 은화나 사막에 정성스럽게 안장된 이집트 여인의 미라와 초상 등을 품은 지하 세계는 또 다른 형태로 역사를 보존하고 있다. 시계를 현재로 당겨 그린란드의 북서부로 옮겨가 보자. 지구 온난화가 심각해지면서 50년 전 수십만 갤런의 유독성 화학폐기물과 함께 만년설 아래 봉인된 냉전 시대의 미군 미사일 기지가 노출되기 시작했다. 인류는 사랑하기에 지키고 싶은 것들을 언더랜드로 가져갔을 뿐만 아니라 두렵기에 버리고 싶은 것도 땅속으로 가져갔다고 책은 전한다.
사람이 무언가를 땅에 묻는 이유 중 하나는 안전한 보관의 수단으로써 기억과 물질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며 “언더랜드가 비밀을 잘 간직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래서 동굴부터 도시, 폐허, 배관, 물 속, 빙하 등의 언더랜드는 소중한 것을 지키고, 유용한 것을 생산하고 해로운 것을 처분하는 은신처, 생산지, 처리의 역할을 반복하며 문화와 시대를 관통해 왔다. 폐소공포증이 있다면 조금 고통스러울 대목들이 있기는 하나, 고비만 넘기면 경이로운 깊이감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부제는 ‘심원의 시간여행’. 2만8,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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