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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얘기만 나오면 화·우울’…‘부동산 블루’ 대한민국 덮치다

'집값 천정부지' 무주택자 좌절

'집 가진 게 죄냐' 다주택자 분노

'세금 폭탄 '1주택자는 한숨만

'이번 생은 망했다' 흙수저 2030 눈물

6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국민주권행동 등 사회단체 회원들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 결혼 4년차를 맞은 한 부부는 최근 들어 말다툼이 더 심해졌다. 이유는 ‘아파트’다. 아내가 결혼 초기였던 지난 2017년 아파트를 사자고 했지만 남편이 이를 일축했기 때문이다. 아내 A씨는 “그때 눈여겨봤던 집이 3년 새 5억원이나 올랐다”며 “한순간의 선택으로 평생 셋집을 전전해야 하나 싶어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지방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씨 또한 최근 우울증 초기 증상을 보이고 있다. 서울에서 거주하는 친구의 집값이 3억원가량 올랐지만 본인 집은 오르기는커녕 3년 동안 3,000만원 내렸다. 그는 “지방근무를 이렇게 후회해본 적은 없다”고 토로했다.

‘부동산 블루(우울증)’가 한국을 뒤덮고 있다. 20여차례 이상의 정책 헛발질로 무주택자는 치솟는 집값에 좌절하고 유주택자는 죄인 취급하는 규제와 오른 세금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있다. 가족·친구 모임에서조차 부동산 이야기는 금기시된다. 각각 처한 상황에서 스트레스가 한계치에 도달하다 보니 ‘아파트’라는 단어를 입에서 꺼내는 순간 ‘다툼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급등장이 나타날 때마다 부동산은 사회 문제가 됐다”며 “다른 점은 우울증이 전 계층과 지역으로 광범위하게 퍼진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선 무주택자들은 좌절을 넘어 ‘월세족’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국가통계인 한국감정원 자료를 보면 현 정부 들어 현재까지 수도권 아파트 값은 10.53%, 서울은 11.80% 상승했다. 체감 집값 상승은 더 크다. 언제든 살 수 있다고 자신했던 외곽지역마저 급등했다. 구로구는 이 기간 아파트 매매가가 12.66%나 치솟았고 다른 중저가 지역도 8% 이상 올랐다. 한 무주택자는 “정부 말만 믿고 기다렸는데 이제는 외곽도 어렵다”며 “전세가는 오르지, 이러다가 자식에게 물려줄 집조차 없이 평생 월세로 살아야 하는지 두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세금만 왕창 뜯겨 스트레스 …2030는 내집마련 이생망>

지방 유주택자는 언제 ‘깡통주택’이 될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다. 지방 아파트 값은 현 정부 들어 5.01% 하락했다. 서울에 집을 가진 친구는 부자가 되는데 자신은 ‘집 가진 거지’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한 지방 거주자는 부동산카페에 “결국 정부 정책이 서울 집값을 더 올려놓지 않았느냐”며 “이번 8·4공급대책도 서울 잡겠다고 지방은 더 죽이는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지방 중소도시 거주자일수록 스트레스는 더하다.

서울 강남 등 인기지역의 유주택자도 ‘부동산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급격히 오른 세금 등 정부의 규제와 ‘적폐 투기꾼’으로 치부하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상황이다. 보유세가 높다며 하소연이라도 하면 “비싼 집에 사니 세금 더 많이 내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내가 집값을 올리고 싶어 올린 것도 아니고 정부가 올려놓고 세금만 왕창 뜯어가고 있다”고 항변해도 소용없다.

강남의 한 유주택자는 “나도 월급 받아 은행이자 내고 살고 있다. 매년 종부세 낼 생각만 하면 걱정이 앞선다”며 “지금은 직장에 다녀 근근이 버틸 수 있는데 만약 잘리기라도 하면 세금 때문에 집이 경매에 넘어갈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어 “집값이 올랐다 해도 팔지 않는 이상 돌아오는 것은 없고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임대주택사업자는 더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정부가 장려해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는데 이제 와서는 투기세력으로 몰고 있어서다. 그들은 ‘6·17대책’ 이후부터 정기적으로 집회를 열며 “살려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집회 현장에서 만난 한 임대사업자는 “오죽 스트레스가 심했으면 적폐세력으로 몰리는데도 얼굴을 내놓고 하소연하겠느냐”고 한탄했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부동산 대책들도 이들에게는 스트레스다. 워낙 수 없는 대책이 나오다 보니 규제의 여파를 분석하는 유튜브 영상은 높은 인기를 끌고 있고 이른바 ‘일타 강사’들의 특강에는 수백·수천명이 몰리고 있다. 부동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으로 몰리고 있다. 30대 중반 직장인 D씨는 “전셋집에 살고 있다고 하자 주변인들로부터 질타 아닌 질타를 받았다”며 “내 집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패배자가 된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를 줄인 말)’을 통한 내 집 마련도 불가능한 20대에서 30대 초반 청년들은 스스로를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고 평가한다. 청약을 노리기에는 가점이 낮은데다 모아놓은 돈도 없어 아예 집을 마련을 할 수 없어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 이상으로 부동산 값이 올랐다”며 “실업률이 높아지는 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니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현재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이 청년들의 실정에 맞지 않는다”며 “정부 당국자들이 청년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설상가상으로 ‘로또분양’ 양산과 ‘임대차 3법’은 사회의 각 계층을 또다시 갈라놓고 있다. 우선 ‘로또청약’을 둘러싼 2030 젊은층과 4050 중장년층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현행 가점제에서 불리한 30대 등 저가점자들이 반발하자 정부는 생애최초특별공급 등 추첨제 물량을 늘려 이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려 했다. 그러자 이제는 반대로 가점이 높은 4050이 반발하는 모양새다. 한 40대는 “이 나라가 30대를 위한 것이냐. 왜 그들에게 로또물량을 더 늘려주느냐”며 “수십년간 청약통장 가입한 게 죄가 됐다”고 했다.

여당이 강행한 임대차 3법 또한 임대인과 임차인들의 스트레스를 높인다. 임대인들은 세입자를 내쫓는 방법을 공유하며 “내 재산인데 왜 내 뜻대로 사용하지 못하느냐”고 항변한다. 임차인의 급작스러운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등으로 잠을 이룰 수 없다는 임대인의 고충은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임차인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 임차인은 “오는 10월이 계약 만기다. 일단 연장을 집주인에게 부탁했는데 혹 (집주인의) 마음이 바뀌어 본인이 들어와 살겠다고 할지 걱정”이라며 “집주인이 산다고 하면 전세난민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울은 원래 상실·좌절과 관련이 깊다”며 “집을 사기 어려워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유주택자도 세금 등으로 불만이 많다”며 “부동산을 중심으로 시민들 간에 위화감이 조성되면서 서로 불편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혁준·한민구기자 awlkw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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