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판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녹색금융을 꺼내 들자 금융권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도 녹색금융을 추진하면서 각종 투자, 금융상품이 쏟아졌다가 용두사미로 끝났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건전성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금융사들은 정부가 또다시 금융권에 손 내미는 것은 아닌지 부담스럽다는 분위기다.
금융위원회는 11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금융리스크대응반 회의를 열고 ‘녹색금융 추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은 “한국판 뉴딜의 한 축인 그린뉴딜을 뒷받침하기 위해 금융권과 녹색금융 추진 TF를 구성해 녹색금융의 제도적 기반을 확립하고 투자 여건을 조성해나가겠다”며 “정부는 민간과 금융이 참여하는 뉴딜펀드, 모험자본, 정책금융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디지털 인프라, 그린·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에 대한 자금공급이 확대되도록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당장 녹색금융 TF의 구체적인 방향이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업계에서는 TF의 첫 과제로 ‘뉴딜펀드 띄우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정부는 오는 2025년까지 160조원이 드는 한국판 뉴딜사업을 추진하면서 필요 재원의 10%를 뉴딜펀드에서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국채 수익률보다 높은 연 3%대 수익률을 내걸었다.
금융권은 10여년 전 이명박 정부 때 녹색금융이 추진됐던 경험을 떠올리며 이번 정책에 신중한 입장이다. 지난 2009년 전국은행연합회·금융투자협회·손해보험협회·생명보험협회·여신금융협회 등 금융기관들은 녹색금융 방침에 따라 ‘녹색금융협의회’를 창립하고 각종 녹색 예·적금, 대출 상품을 출시한 바 있다. 현재 이 상품들은 판매가 중단된 상태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당시 은행들이 발광다이오드(LED) 전등을 교체하는 용도의 대출을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녹색금융에 참여했지만 실제 이를 이용하는 고객이 적어 실효성이 없었다”며 “올해는 코로나19로 은행이 건전성·수익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더 부담스러운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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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금융지주들은 정부 기조에 발맞춰 수조원대 투자를 내건 상황이다. KB금융은 2025년까지 총 9조원 투자를 약속했다. 우리금융도 5년간 디지털 뉴딜, 그린뉴딜, 안전망 강화 등에 총 10조원 규모의 여신·투자를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현재 녹색금융 TF와 관련해 금융사에 협조 요청이 들어간 것은 없다”면서도 “뉴딜펀드 등을 고려할 때 기존 금융사에 손 내미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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