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산지에 있는 태양광 발전시설이 산사태를 촉발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국내 대다수 태양광 발전설비가 안전기준 강화 전에 들어서 자연재해에 취약한 구조라 추가 피해 가능성도 제기된다. 맞물려 재해에 취약한 태양광 설비가 차세대 핵심 발전원으로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①96%가 시공기준 강화 이전 설비=1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말 기준 허가된 전체 산지 태양광 발전설비는 1만2,721개에 달한다. 이 중 산사태 우려로 시공기준(일시사용허가제도 도입)이 강화된 2018년 12월 이전에 설치된 설비가 1만592개다. 규제 강화 이후 설치됐으나 사전에 설립 신청을 해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설비(1,591개)를 포함하면 전체 설비 중 95.7%(1만2,183개)가 안전규제 강화 이전에 들어선 것이다.
문제는 올해 태양광 시설 관련 산사태 12건이 모두 시공 기준이 강화되기 전 완공된 곳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사고 설비 규모가 전체 설비의 0.1%에 불과하지만 규제가 적용되지 않은 설비에서 추가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산림청은 2018년 관련 규제를 강화하면서 내놓은 보도자료를 통해 ‘태양광 발전소 건설을 위해 부지에 자라고 있던 수십 년 된 나무를 벌채하면서 산사태· 토사유출 등의 피해도 우려되는 실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강화된 규제가 적용되지 않은 설비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정부도 확인한 셈이다. 다만 산업부 관계자는 “산지 태양광 허가실적 추이와 산사태 발생 건수를 비교해보면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산사태 주요 원인을 산지 태양광 설비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②차세대 발전원이라지만…안정성 흔들=이번 사태로 태양광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도 다소 커질 것으로 보인다. 폭우·태풍 같은 빈번한 자연재해에 발전단지 자체가 가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신재생발전의 경우 날씨에 따라 전력생산량이 불안정한 터라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선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들쭉날쭉한 전력수급을 해결할 방안으로 꼽혔던 에너지저장장치(ESS) 역시 잇따른 화재사고로 보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③‘신재생 속도전’…주민 반발 커질 듯=잇단 사고에도 정부는 예정대로 보급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중장기 전력대계인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관련 워킹그룹 논의 결과를 보면 올해 19.3GW인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은 오는 2034년 78.1GW로 4배 급증한다.
전문가들은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정책을 밀어붙일수록 지역 갈등을 더욱 유발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신재생에너지는 석탄발전·원자력발전과 달리 집약도가 낮아 더 많은 지역에 발전소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이미 곳곳에서 주민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역임했던 한 전문가는 “현재 발전소가 들어와 있는 지역을 제외하고 새로운 발전소 입지를 찾는 것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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