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VC)업계의 숙원사업이었던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벤촉법)이 지난 12일부터 시행되면서 VC들의 새 먹거리가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금융과 부동산처럼 투자가 불가능했던 업종 제한은 물론이고 해외 투자 한도 역시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다양한 수요의 민간 자금이 유입돼 벤처투자업계가 질적·양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금껏 벤처투자 관련 사항은 1986년과 1997년에 각각 제정된 ‘중소기업창업지원법’과 ‘벤처기업육성에관한특별조치법’으로 이원화돼 있었다. 이에 VC업계는 투자·관리에 번거로움을 토로해왔다.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규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기존 법안을 통합한 벤촉법은 벤처펀드의 자율성을 보장해 민간 중심의 투자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우선 투자할 수 있는 분야가 대폭 늘어났다. 기존에는 금융·보험·부동산·음식·숙박업 등에 창업투자회사가 투자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는 주점업과 사행산업 등 미풍양속을 현저히 저해하는 업종을 제외하고는 모든 분야에 투자가 가능하다. 기존 산업에서 혁신을 일으키는 스타트업의 움직임을 반영했다.
예전에는 투자사들이 공유 오피스 스타트업인 패스트파이브에 투자하기 위해 유관 기관에 문의를 했다. 해당 사업이 투자 금지 업종인 부동산업으로 묶이는지를 따져봐야 했기 때문이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설립 6년 차인 패스트파이브는 최근 코스닥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할 정도로 국내를 대표하는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창업투자회사의 의무투자 비율 산정 기준을 조합(펀드)별에서 총자산 방식으로 바꾼 것도 운신의 폭을 넓힌 대표적인 변화다. 지금까지는 각 펀드마다 중소기업벤처부가 인증한 벤처기업에 최소 40%를 무조건 투자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각 펀드에는 최소 20%를 투자하되 전체 펀드를 합친 벤처 투자액이 최소 40%만 넘으면 된다. 예를 들어 100억원짜리 펀드가 두 개 있다면 예전에는 각각 최소 40억원씩 반드시 벤처기업에 투자해야 했다. 앞으로는 A펀드는 20억원, B펀드는 60억원만 투자해도 된다.
해외 투자 확대의 걸림돌로 지적됐던 한도 역시 폐지됐다. 지금까지는 납입자본금의 40%까지만 해외에 투자할 수 있어 투자처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는 한국투자파트너스와 미래에셋벤처 등은 증자로 자본금을 확충해왔다. 앞으로는 해외 투자 역시 별도의 규제 기준 없이 다른 자산과 동일하게 취급된다. 예컨대 최소 벤처 투자 한도(20%)를 채운 펀드라면 나머지 80%는 모두 해외 투자로만 채울 수도 있다. VC업계 관계자는 “각 펀드별로 색깔에 맞춰서 운용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진 만큼 바이오·제조·테크 등 특정 분야에 특화된 펀드와 투자사들이 더 많이 생길 수 있다”며 다양한 수요를 가진 민간 자금을 유인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기정기자 aboutk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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