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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복부인 상징 빨간바지, 욕하면서도 모두가 입고싶었죠"

[인터뷰]국립오페라단 ‘빨간바지’ 작가 윤미현

70년대 강남 땅투기꾼 군상 그려

인간욕망·사회 부조리 꾸준히 써

"우리이야기 계속 오페라로 제작"

국립오페라단의 창작 신작 ‘빨간바지’의 윤미현 작가가 연습이 한창인 충무아트센터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사진=이호재기자




“새빨간 바지를 입고 마을금고에 들러 대출을 받고 땅을 사들이러 가는 거야. (중략) 아 복부인이 되고 싶어라, 아 빨간바지가 되고 싶어라.”(오페라 ‘빨간바지’에서)

너도나도 ‘빨간바지’를 꿈꾸던 때가 있었다. 강남 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대 서울, 부동산 시장을 주름잡던 복부인을 그렇게 불렀다. 생존과 내 집 마련의 꿈, 엇나간 자산 증식의 욕망이 뒤엉킨 부동산 시장은 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란 가득한 대한민국 대표 키워드다. 모두가 복부인을 (욕하면서도) 꿈꾸는 시대. 국립오페라단의 신작 ‘빨간바지’에는 지금 바로 우리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대한민국연극제 대상, 동아연극상 희곡상 수상자로 그동안 연극과 오페라를 넘나들며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재기발랄한 풍자로 풀어내 온 극작가 윤미현은 이번에도 50년 전 배경을 통해 2020년을 사는 관객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건넨다.

“투기를 욕하면서도 ‘나도 강남에 집 갖고 싶다’는 꿈을 꾸는 게 인간이죠.” 최근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난 윤 작가는 사람들의 욕망, 그리고 그 욕망에 투영된 인간의 이중성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욕하면서도 갈망하는 존재, 한국사회에서 부동산만큼 이를 대변하기 좋은 무엇은 없다. 어릴 때부터 신문 기사를 꼼꼼히 챙겨봤다는 윤 작가는 “언젠가 부동산을 소재로 작품을 쓰겠다고 생각하던 중 3년 전 국립오페라단으로부터 신작 요청을 받은 나실인 작곡가와 본격적으로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고 전했다. 지난해 여름 이미 초고가 완성된 이 작품은 공교롭게 최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논란과 맞물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의 ‘빨간바지’ 출연진과 스태프들이 충무아트센터에서 막바지 연습을 진행하고 있다./이호재기자




오페라 ‘빨간바지’는 1970년대 개발 열풍이 한창이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버스 토큰 하나로 아파트 세 채를 만들어낸다는 강남 부동산 큰손(일명 빨간 바지) 진화숙과 복부인이 되고 싶은 가난한 여인 목수정, 이들을 이용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여인 유채꽃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사람들의 욕망과 그 시절의 사회상을 그려낸다. 어린 시절 연일 뉴스를 장식했던 빨간바지에 대한 이야기는 윤 작가에게 또렷한 남은 기억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쓴 시(詩)의 한 표현이 ‘복부인이 되고 싶어’였을 정도로 화제였죠. 이번 작품에 그 문장을 가져와 쓰기도 했어요.”

극중 누구 하나를 명확한 ‘악인’으로 규정할 수 없다. 예컨대 유채꽃은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버스 안내원이 됐다가 자신을 둘러싼 환경 탓에 소매치기가 되고, 빨간바지를 꿈꾸게 된다. “사회의 부조리로 인해 변질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이기에 한명 한명 애정을 담아 대본을 썼다.

작품 곳곳에는 시대상을 담아내는 윤 작가 특유의 절묘한 은유가 녹아 있다. 대표 아리아인 ‘도시의 화전민’에서는 복부인들을 도시를 경작하는 화전꾼으로 비유한다. ‘먼지 날리는 흙바닥에 새빨간 구두로 거실을 긋고 주방을 긋고 베란다를 그어 땅속에 감자를 심듯 아파트를 심어 버리는 빨간 바지로 서울의 농사를 짓는 세련된 도시의 화전민’ 말이다.

윤 작가는 그동안 오페라 ‘검은 리코더’, ‘텃밭 킬러’ 등을 통해 한국 사회를 조명하는 작품을 선보여 왔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자체가 뉴스에 나오는 모습 아니겠느냐”며 “작품이 시대상과 동떨어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관객과 만날 예정이었으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으로 무관중 온라인 공연으로 전환, 28일 오후 7시 30분 네이버 TV로 중계한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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