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면서 국정 불확실성이 하나 사라지긴 했지만, ‘정상 외교 복원’이란 측면에서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와 소통 구축부터 관세·북미 패싱 대응까지
대미 외교에서는 정상 간 소통을 되살리는 일이 시급하다. 12.3 계엄 이후 한국의 권한대행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이 동맹·적국 가릴 것 없이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등 국제관계를 철저히 이익 중심으로 접근하는 상황에서 정상외교 복원을 통한 민첩한 대응이 필수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폭탄에 대응하는 것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한국에 대한 25% 관세를 비롯한 세계 각국을 향한 미국의 상호관세가 오는 9일(현지 시간) 발효된다.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는 이미 지난달 발효가 됐고 한국의 대미 수출 1위 품목인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도 미 동부시각 3일 0시를 기해 시작됐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대미 수출 3위 품목인 반도체에 대해서도 곧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3일 밝혔다.
일본 등 세계 각국이 상호관세율을 낮추기 위해 미국과의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우리도 현 내각과 정치권이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서 공동 대응을 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아울러 조선, 원전 등 미국과 협력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한국의 국정 공백 속에 미국의 주한미군,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는 것도 대응해야 할 부분이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는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임시 국가 방어 전략 지침’이라는 문건을 내부에 배포했고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 미 본토 방어 등을 최우선 전략으로 전환했다고 보도했다. 또 “유럽, 중동, 동아시아 동맹국들이 러시아, 북한, 이란 등의 위협 억제에서 대부분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기 위해 국방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적시, 한국에도 방위비 분담금 압박을 가할 것을 암시했다.
향후 예상되는 북미 정상회담 등에서 한국이 ‘패싱’당하지 않게 대비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관련 “우리는 소통하고 있다”며 “어느 시점에 무엇인가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북한을 “큰 핵 국가”라고 재차 칭해 향후 북한의 핵을 사실상 용인하고 제재를 완화하는 ‘스몰 딜’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中에 강경기조 尹 퇴진…균형점 모색을
대중 강경 기조를 보였던 윤석열 정부가 막을 내리면서 한중 관계도 중대한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윤석열 정부의 강경 모드로 각을 세웠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이 한국을 ‘일방적 무비자’ 대상에 포함하고, 한중 정상회담 개최를 약속하면서 관계 개선에 기대를 키웠다. 하지만 12.3 비상 계엄 사태 이후 양국의 교류는 다시 중단되다시피 했다. 특히 정재호 전 주중대사와 교체될 예정이던 김대기 신임 대사 내정자의 부임이 사실상 무산되며 양국 외교 채널도 공백이 발생한 상태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한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 오는 10월 말 경주에서 개최될 예정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문도 유력한 상황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와 관세 폭탄으로 글로벌 동맹에 균열을 내는 사이 중국은 다자주의를 앞세워 우군을 넓혀가고 있으며 한미일 협력 구도가 흔들리는 틈을 파고들어 한중일 관계 개선에도 나서는 중이다. 앞으로 치러질 조기 대선에서 어느 진영이 차기 정권을 잡을지 모르지만 윤 정부보다 반중 정서는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일부 관영매체는 한국이 60일 내에 대선을 실시해야 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대선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라고 전하기도 했다.
尹이 진전시킨 한일관계, 지속성 예의주시
일본과는 관계 지속성 확보가 당면 과제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의 파면 소식이 전해진 이날 중의원 내각위원회에서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올해는 한일 수교 60주년"이라며 한일 협력은 중요하고, 일본 정부의 중요한 과제라는 의견을 밝혔다.
협력을 거듭 강조했지만, 향후 한일 관계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요미우리신문은 “징용공(강제 동원 피해자) 소송 문제의 해결책을 마련해 한일 관계를 극적으로 개선한 윤 전 대통령의 퇴진으로 한일 관계가 경색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강제 동원 피해자에 대해 일본 피고 기업을 대신해 한국재단이 판결금 등을 지급하는 제3자 면제 방안을 채택하고,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도 찬성하는 등 대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일본에서는 차기 대권 주자로 반일(反日) 성향으로 알려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정권 교체가 이뤄질 경우 개선된 한일 관계가 다시 경색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본 정치 상황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이시바 내각의 지지율이 저조한 가운데 당내에서는 ‘이시바로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못 이긴다’며 총리 퇴진론에 불을 붙이고 있다. 대안으로 부상 중인 인물이 당내 극우·보수 인사이자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자주 논란을 빚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이다. 한일 양국 정치에 리더십 이슈가 더해질 경우 한미일 삼각 공조, 북한 도발 및 중국의 무력 확장 대응 등에 대한 협력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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