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혁신 광풍(狂風)이 불고 있지만 혁신 노력이 연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국내 스타트업(초기기업) 창업육성의 메카로 불리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D.CAMP·디캠프)의 김홍일(54·사진) 센터장은 24일 조선 성종대왕릉이 훤히 보이는 선릉센터에서 서울경제와 4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며 스타트업 창업 대국화 전략에 대해 역설했다. 김 센터장은 “스타트업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떠오르면서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금융기관·대기업·대학 등이 육성 경쟁에 나섰다”면서 “이런 노력이 결과적으로 연극으로 끝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스타트업·벤처 육성을 위해 보조금을 뿌리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창업 생태계가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우리 모두 대기업이 하지 못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하면서 고용을 창출하는 스타트업을 보호가 아닌 존경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디캠프는 국내의 대표적인 창업육성기관으로 꼽히는데.
△과찬이다. 스타트업의 실패와 실수를 용인하고 성장의 터닝포인트를 만드는 혁신가 캠프다. 은행에서 8,450억원을 기부받아 혁신성장의 1번지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복합지원 플랫폼인 ‘프론트원’을 공덕역 인근에 열었다.
-디캠프는 스타트업에 직간접 투자도 꽤 하고 있는데, 국내 투자사들의 운용기간이 짧아 초기 기업은 소외되고 있는 실정이다.
△디캠프는 한국신용데이터·삼분의일·핏펫·집토스·어썸레이 등 121건에 143억원을 투자했고 평가액은 그 몇 배로 불어났다. 외부 자산운용사의 23개 펀드에 7,432억원을 약정(펀드 조성 총액은 8조8,690억원)해 투자를 늘리고 있다. 스타트업펀드·성장사다리펀드·바이오펀드 등에 투자하는데 보통 만기가 7년이어서 최장 13년 만기인 동행펀드를 결성했다. 펀드 투자기간이 늘어나야 초기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 디캠프가 ‘인내자본’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 동행펀드는 350억원 규모인데 다른 모태펀드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정부가 ‘뉴딜펀드’에 3% 안팎의 수익률과 세제혜택을 얘기했는데 투자기간을 길게 잡아야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 싱가포르는 국책과제나 기술기업에 일정 금액 이상 투자하는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주는데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벤처·스타트업이 처음부터 해외시장까지 염두에 둘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23개 펀드 중 3개는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에 성공한 교포가 운용하는 것 등 해외펀드다. 프론트원에서 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연결하기 위해 그에 맞는 액셀러레이터와 벤처캐피털(VC)도 같이 입주시키고 있다.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실에서 잠자고 있는 좋은 기술을 사업화하는 게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홍릉펀드 등 기술사업화펀드 3개에도 투자한다. 웹 기반 서비스는 미국 것을 가져와 수정해도 되지만 실험실에서 잠자는 과학기술의 사업화와 해외진출을 체계적으로 도와야 한다. 올 1월 홍콩투자청과 디데이를 같이한 것도 이 때문이다. 45개국 149개 기관과의 네트워킹을 활용해 우리 기술을 소개하려고 한다. 프론트원에 입주한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와 함께 스타트업의 제3세계 진출을 모색하고 웹으로 세미나를 열어 스타트업을 소개하기도 했다.
-우리가 아직 해외 인수합병(M&A)이나 지분투자, 인재 유치에 미흡한 실정이다.
△대기업들이 해외에 특허도 많이 출원하고 3자를 내세워 해외특허도 많이 사지만 아직 인재 유치나 M&A 면에서는 언어와 문화 차이로 쉽지 않다.
-스타트업 육성 등 혁신 바람이 거세지만 효과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고 있다.
△혁신이 연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은행·지자체·공기업 등이 스타트업을 뽑아 입주시키는데 직원은 순환보직으로 전문성이 떨어져 한마디로 연극하는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디캠프에서는 스타트업이 교류하고 경쟁하면서 자연스럽게 시너지 효과도 낸다. 우리가 스타트업을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봐야지 지원 대상으로 보면 효과가 적다. 여러 지자체는 물론 홍콩·오스트리아 등 해외 파트너가 디캠프를 개소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자연스러운 창업 생태계 구축이 중요하다. 스타트업을 존중하는 육성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
-스타트업과 기존 산업의 갈등도 만만찮다.
△대기업 등의 기득권·불합리성·비효율성을 깨는 과정에서 나오는 갈등은 세계적 현상이다. 스타트업은 고객의 불편을 해소하고 대기업이 공급하지 못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며 고용을 창출한다. 스타트업 대표는 기성세대에 편입되지 않으려는 자발적 부적응자인데 보호 대상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이다.
-혁신을 가로막는 것에는 대리인 비용도 만만찮은데.
△‘파괴적 혁신’ 이론을 창시한 고(故)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전 하버드대 교수는 혁신이 안 되는 것은 큰 조직에서 임기가 정해진 대리인이 임기 내 성과에 집착하거나 내부 권력화에 몰두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래서 스타트업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의 열정과 은퇴자의 경험을 뭉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삼성멀티캠퍼스 등 대기업 교육사를 활용한다든지 우선 금융권 은퇴자들이 스타트업의 경영이나 금융·마케팅에 에너지를 쏟도록 연결하려고 한다. 다만 직장인은 보통 시스템의 부품으로 살았기 때문에 경력은 화려해도 의사결정을 많이 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스타트업의 경우 10명 중 9명은 실패하지만 나중에 그중에서 리더가 나올 수 있다.
-스타트업 정책이나 문화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창업 재수생이 별로 없는 이유는 뭘까. 사회적 자본의 신뢰 문화가 잘 구축돼 있지 않고 투자를 길게 가져가는 인내자본이 거의 없다. 사회적으로 돈은 넘치는데 부동산이 아니라 생산적 분야로 흐를 수 있도록 물꼬를 잘 터야 한다. 정책자금 대출 시 불가피한 경우 경영자에게 면책해주지만 은행은 안 되고 있다. 은행이 담보도 잡고 심사역이 뒷돈을 받을까 봐 계속 돌리는데 심사 역량을 키우며 잘하려다 실패한 경우는 면책하는 것도 필요하다. 모 은행의 경우 지난해 말 대손충당금 설정액이 1조5,000억원에 달한다. 부동산이나 해외투자에서 손해를 볼 경우에 대비해 쌓아두는 것이지만 일부라도 스타트업 투자로 돌렸으면 한다. 사기꾼도 많지만 미래동력은 스타트업밖에 없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서게 해야 한다.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보조금을 뿌리겠다는 발상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정부는 자율적인 창업 생태계 조성에 힘써야 한다.
-국가 연구개발(R&D) 시스템도 신뢰에 기반한 쪽으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국가 R&D 과제를 대부분 성공으로 처리하지만 실제 큰 효과를 거둔 것은 많지 않다. 연구비를 나눠주고 절차적 정당성을 따지는 규제 패러다임이 여전하다. 미국처럼 믿어주되 신뢰를 배반하면 철저히 벌을 줘야 한다. 교수들은 기술사업화와 창업에 아직 적극적이지 않고 세상을 바꿀 연구보다는 논문 연구에 몰두한다. 대학이나 출연 연구소의 기술 중 시장에 나가 실패하더라도 괜찮은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1966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경북대 법대를 졸업했다. 산업은행에서 일한 뒤 홍콩(ABN암로홀딩·리먼브러더스홀딩스·노무라증권)에서 10년간 근무하는 등 국내외 금융사에서 잔뼈가 굵었다. 이어 정부의 지원을 받은 아이디어브릿지자산운용의 대표를 하며 국내 기업의 해외 특허소송을 지원하거나 국내외 특허를 매입해 외국 기업에 판매했다. 중소기업의 특허를 원가에 산 뒤 7~8년간 이자율 개념의 사용료를 내면서 그것을 활용해 돈을 벌면 되사가는 셀앤리스 방식을 특허에 처음 도입했다. 이후 IBK자산운용 부사장에 이어 우체국금융개발원장을 지냈다. 그는 지난 2년 반가량 디캠프를 이끌면서 국내 최대 스타트업 육성기관으로 키워냈다.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란] 국내 최대 창업재단…직·간접투자로 스타트업 육성
디캠프는 전국은행연합회 18개 금융기관이 총 5,000억원을 출연해 지난 2012년 설립한 국내 최대 규모의 창업재단이다. 지금은 출연 규모가 8,450억원으로 늘었다. D는 꿈(Dream)의 약자로 디지털(Digital)·역동적인(Dynamic)·실행(Do it yourself)·헌신(Devotion)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약 15개의 스타트업이 입주한 지상 6층 규모의 선릉센터 외에 지난달에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공덕역 인근 신용보증기금 마포사옥(지상 20층)을 활용해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보육공간인 프론트원을 열었다. 프론트원에는 현재 90개의 스타트업(550여명)이 입주해있다. 김홍일 디캠프 센터장은 “디캠프에서 금기어 중 하나가 베풀고 갑의 입장을 뜻하는 지원이라는 말”이라며 “스타트업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게 기본 임무”라고 전했다. 디캠프가 자리 잡으면서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격려 방문했고 2015년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이 탐방하기도 했다.
디캠프는 예비창업팀부터 기존 사업체까지 온라인-서면-대면 심사를 거쳐 15대1의 경쟁을 뚫은 5개 이상의 팀을 매달 디데이(데모데이·5분 발표 후 10분 질의응답) 무대에 올린다. 나이·성별·국적을 묻지 않고 대학생이든 현직 교수든 은퇴자든 상관이 없다. 물론 바이오헬스케어 등 짧은 시간 디데이에서 다 설명할 수 없는 기술도 선정한다.
지난해부터는 스폰서 격인 외부 공동 주관사를 매달 바꿔 진행한다. 금융권을 비롯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특허청·지방자체단체뿐 아니라 국제금융공사(IFC)·홍콩투자청 등 해외 기관도 같이한다. 디데이 심사를 통과하면 6개월~1년 입주 기회도 주고 투자와 네트워크 등을 지원한다. 김 센터장은 “세상을 바꿀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을 위해 찍새, 딱새, 먹새팀이 역동적으로 움직인다”며 “디캠프와 인연을 맺은 스타트업의 경우 데스밸리를 넘기는 5년 생존율이 76.5%가량”이라며 활짝 웃었다. 대학과도 연계해 지난해부터 서울대 의대에 혁신가 과정을 개설했고 올해 연세대·성균관대·한양대 등과도 연계해 창업가과정을 열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