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에서 1965년 사이 서울 후암동, 대방동, 이촌동 등지에서 철거민들이 쓰레기차에 실려와 한강 이남 갈대밭에 버려졌다. 사람이 산 적 없는 갈대밭이었다. 당시 서울시장 윤치영은 공포와 당혹감 속에 넋을 잃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곳 만은 손대지 않을 테니 재주껏 살아보시오.”
쫓겨난 이들은 어린 자식들의 얼굴을 보니 차마 죽을 수 없어 갈대를 뽑고 땅을 고르고 천막을 쳤다. 그곳이 목동이다. 1970년대 들어서는 아현동 철거민들도 쫓겨왔다. 하지만 현재 목동에 이들이 살고 있는가. 서울시는 올림픽 재원 마련을 위해 목동을 대단위 아파트 단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있는 힘을 다해 저항한 이들은 결국 또 쫓겨났다. 먹고 살기 위한 일자리가 서울에 있는데 빈민들은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났다.
도시 개발의 명분은 항상 미관 개선과 서민 주택 공급이었지만 돈 냄새는 늘 부자들이 먼저 맡았다. 부정한 방법으로 고위 공무원, 정치인으로부터 사전 정보를 먼저 얻어낸 기업들은 개발 예정인 땅을 미리 사들여 ‘대박’을 냈다. 누군가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동안 시인 김사인은 ‘밖에는 바람 소리 사정 없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 잠이 오지 않는다(지상의 방 한 칸, 1987)’며 잠든 아내 등을 바라보며 울음을 삼켰다. 그리고 집 없는 서민들의 불안 속 잠 못 드는 밤은 2020년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한국 사회 여러 분야의 주요 의제를 공론화해온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이번에는 부동산을 지목했다. 신간 ‘부동산 약탈국가’를 통해 역대 정권의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저자는 촛불 민심의 대변자이자 진보 정권을 자처하는 현 정부 역시 부동산 정책에서 무주택 서민을 위하기는커녕 이미 서민들은 범접하기 어려운 서울 부동산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책은 박정희 정권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난 50년 동안 역대 정권들이 부동산 정책을 통해 어떻게 ‘합법적 약탈 체제’를 만들어 왔는지 들여다본다. 마음 편히 발 뻗을 수 있는 내 집을 가지기 위해 뼈 빠지게 일해 저축한 사람들과 전·월세 값이 뛰어 한겨울에도 살던 곳에서 나가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역대 정권의 부동산 정책이 폭력으로 강제로 빼앗는 약탈보다 더 나쁜 약탈이다. 책은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에게는 대한민국이 ‘투기의 천국’이지만 그로 인해 주거 불안의 공포를 겪는 사람들에게는 ‘투기의 지옥’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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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서울올림픽 직후 부동산 투기 광풍에 전셋값이 한 달 새 3배나 뛰자 1989년 어느 무주택 가족은 유서를 남기고 함께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2009년에는 서울 용산에서 철거민 5명이 경찰의 강제 진압에 맞서다 목숨을 잃었다. 사람들은 피 울음을 토했지만 1988년 이래 노동자 평균 임금은 6배 오른 반면 서울 강남권 아파트값은 임금 상승치의 43배, 비강남권은 19배나 올랐다. 부동산을 중심으로 뒤틀려 버린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또 어떤가. 강남을 정점을 부동산 계급이 구조화됐고, 가난한 자에 대한 차별과 모욕은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 냄새’로 슬프도록 현실적으로 묘사됐다.
"현 정부는 부동산 강사보다 못한 아마추어" |
저자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수도권 중심’ 사고방식도 꼽는다. 수도권 주거 문제 해결이라는 핑계를 내세워 수도권 신도시와 교통 시설 건설에 국부를 탕진해온 역대 정권과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현 정부 여당 역시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의제를 국면전환용으로만 쓰는 ‘수도권 정부’, ‘더불어수도권당’이라고 강력하게 우려를 드러낸다.
부동산과 교육이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라는 점도 강조한다. “문재인 정부의 학벌 엘리트가 외치는 서울 찬가”가 계속되는 한 부동산 약탈 문제 해결책 찾기는 요원할 것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글을 맺으면서 현 정권이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있는 검찰 개혁과 부동산 약탈 근절의 경중을 비교한다. “검찰 개혁은 중요한 것일망정 대부분 부동산 약탈 체제의 수혜자들인 그들에게만 중요할 뿐 부동산 약탈 근절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의제 재설정이 필요하다.” 1만6,000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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