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2일 “고용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말한 지 보름 만에 한국은행이 올해 하반기에만 취업자 수가 21만명 대폭 감소할 것이라는 수치를 내놓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고용 충격이 심각한 상황인데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홍 부총리마저 입맛에 맞는 통계만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한국은행은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취업자 수가 13만명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반기 6만명 감소에 그친 뒤 하반기에만 21만명이 줄어들면서 고용 사정이 갈수록 악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면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고용 부진이 계속되고 있고 제조업과 건설업마저 어려운 만큼 당분간 감소세가 이어질 것으로 봤다.
특히 대외여건 악화로 수출 제조업의 업황 개선이 제약되면서 자동차 업종을 중심으로 취업자 감소폭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건설업 역시 공사물량 감소 영향으로 부진에 빠진 상태다. 여기에 최근 코로나19 재확산과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서비스업마저 고용 회복 속보가 늦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충격으로 급증한 일시휴직자 수도 향후 고용회복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홍 부총리는 불과 보름 전인 지난 12일 통계청이 7월 고용동향을 발표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5월부터 고용상황이 매달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취업자 감소폭이 4월을 저점(-47만6,000명)으로 5월(-39만2,000명), 6월(-35만2,000명), 7월(-27만7,000명) 등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대면업무 비중이 높은 업종 상당수가 여전히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최근 집중호우로 다음 달 발표된 8월 고용상황도 큰 부담”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기대했던 V자 반등도 어렵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오는 10월까지 코로나19 확산세를 잡지 못하면 성장률이 -2%대로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서 ‘V자 반등’을 강조하며 경제와 방역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모두 놓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4분기부터 경제가 V자 반등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 정부의 입장과는 배치된다.
이날 한은은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올해 -1.3%, 내년에는 2.8%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5월 발표한 전망치 -0.2%에서 1.1%포인트나 낮춘 것이다. 연간 성장률이 -1.3%가 되려면 3·4분기와 4·4분기 성장률이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 후반대를 기록해야 한다.
한은은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5월에 이어 이번에도 시나리오별로 전망치를 발표했다. 기본 시나리오는 최근의 재확산 움직임이 올해 초와 비슷한 40~50일 동안 지속되다 10월부터 진정될 것이라는 가정에 따라 -1.3%를 예상했다. 코로나19가 가라앉지 않고 겨울까지 이어지는 비관적 시나리오에서는 -2.2%, 빠르게 진정될 것이라는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는 -0.9%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은 기본 시나리오뿐 아니라 비관적·낙관적 시나리오까지 모두 대폭 하향 조정하면서 플러스(+) 성장 가능성을 배제했다. 전망치를 대폭 끌어내린 데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15일을 기점으로 국내에서 확진자 수가 급증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김웅 한은 조사국장은 “만약 코로나19 재확산이 없었다면 성장률을 -1%대까지 하향 조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사상 최장기간 지속된 장마가 성장률을 더 끌어내렸다. 한은은 이번 장마와 집중호우가 3·4분기 성장률을 0.1~0.2%포인트 낮출 것으로 추산했다. 길어진 장마로 평년보다 기온이 떨어져 에어컨·선풍기 등 판매가 저조했고 여행이나 야외활동도 줄면서 음식·숙박업과 같은 서비스업마저 타격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6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올해 성장률을 0.1%로 제시한 정부도 역성장 가능성을 시인했다. 이날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정부도 6월 초 0.1%라는 성장 목표를 제시했지만 당시에도 역성장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었다”며 “2·4분기 실질 GDP -3.3%, 그리고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경기 반응속도가 지연되는 것을 고려할 때 6월 초의 목표를 달성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코로나19 확진자 추이가 꺾이지 않아 사회적 거리두기가 3단계로 격상될 경우다. 사실상 봉쇄조치로 볼 수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가 시행되면 실물경제에 타격을 주는 것은 물론 주가와 환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한은은 이번 경제전망 과정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코로나19 확산 추이에 따라 현재 전망치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날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경제 회복이 더뎌질 것이라고 보면서도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추가 금리 인하 여력이 얼마 남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금리 인하 효과와 향후 전개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근 부동산 가격 급등에 부담을 느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은은 국고채에 대해서는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매입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장기 채권 금리를 관리하는 ‘수익률곡선제어(YCC)’에 대해서는 활용할 계획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국내 금융기관과 외국인의 국고채 수요가 상당히 견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당장 수급 불균형에 따른 시장 불안 발생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지원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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