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 재발로 사임 의사를 밝힌 가운데 아시아 증시에 대한 관심이 큰 해외 투자자들이 일본 증시에서 한국이나 홍콩 증시로 갈아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그동안 아베 정권이 금융완화(양적완화)를 중심으로 추진한 ‘아베노믹스’가 지속하기 어려운 만큼 일본 증시도 상승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베 총리가 재집권한 이후 7년8개월 동안 일본 증시는 2.3배나 오를 정도로 밸류에이션 부담도 어느 정도 있는 상태라는 지적이다. 같은 기간 한국 증시는 19% 오르는 데 그쳤다.
"차기 정권, 아베 경제정책 따르지 않을 것"
미국의 한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2012년 아베 정권 재집권 이후 일본 기업들에 소수주주로서 투자하면서 큰 혜택을 받아왔다”면서 “특히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추진 등 개혁에 나선 데에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가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제도로 일본 정부는 지난 2014년 도입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사임으로 차기 총리가 아베 정권의 경제정책을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바녹번글로벌포렉스의 마크 챈들러 최고시장전략가는 “(아베 총리 재집권 이후) 7년 이상의 금융완화에도 물가 침체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데다 저금리 장기화로 금융기관의 경영상황은 악화됐다”면서 “차기 총리는 금융완화에 적극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양적완화 장기화로 엔고 및 약달러 현상이 진행돼 연말까지 달러당 엔 시세가 102엔대까지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엔 환율은 달러당 105엔 수준인데 엔화 가치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 언론에서는 차기 총리 유력 후보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을 꼽고 있다.
정권 후반부터 이미 아베노믹스 동력 상실
다만 ‘포스트 아베’ 정권의 경제 정책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UBS증권의 제이슨 드라호 헤드는 “경제나 정책 때문에 아베 총리가 사임을 한 게 아니”라며 “(아베 총리의 사임이) 일본 주식 투자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충격에서 회복하려면 재정 및 금융정책이 필수적인 데다 눈에 띌 만한 방침 전환은 예상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니혼게이자이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임기가 오는 2023년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금융완화 노선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하는 투자자가 많다”면서 “일본은행의 추가 대책이 한정적인 가운데 차기 정권의 재정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아베 사임 충격에 日 증시 2% 이상 급락
아베 집권기 日증시 2.3배 오른 반면 韓증시 19% 상승
하지만 아베 정권 기간의 주가 상승은 초반기에 집중돼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니혼게이자이는 “아베 총리는 동일본 대지진과 남유럽 재정위기 이후의 집권했다”면서 “불황기의 막바지에는 통상 주가가 오르는 타이밍이 있는데 이때 총리에 오른 덕택에 도움을 받았다는 논란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닛케이 지수 상승분의 거의 4분의 3은 집권 후 첫 2년 동안 달성된 것”이라며 “이후 엔화 약세가 한풀 꺾이자 주가 상승세는 둔화됐다”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는 기업들의 수출 진작을 위해 엔화 약세를 추구해왔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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