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일 총지출 증가율이 8.5%에 이르는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했지만 재정 악화를 제어할 수 있는 재정준칙은 내놓지 않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월 21대 국회 첫 기획재정위원회에 나와 8월 중 재정준칙을 내놓겠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언론 인터뷰에서도 재정준칙을 내년도 예산안과 함께 공개하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재정준칙 발표 시점만 미룬 것은 아니다. 내용을 두고도 ‘준칙’의 의미가 점점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 부총리는 지난달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내년도 예산안 사전브리핑에서 재정준칙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선진국 중에는 채무준칙, 수지준칙, 지출준칙, 수입준칙 등 계량적인 준칙에 비계량적인, 정성적 준칙을 결합해서 운영하는 곳도 있다”면서 유연성에 방점을 뒀다. 기재부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92개 국가가 재정준칙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위기처럼 극단적인 위기가 와서 재정이 반드시 역할을 해야 될 상황에는 예외를 인정하는 등 여러 가지 유연성을 보강해 준칙을 제시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재정준칙 발표 시점을 머뭇거리고, 강제성보다 유연성을 강조하는 것은 최근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준칙 무용론’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기재부는 재정준칙 도입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재정운용의 경직성을 심화시킨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기재부 내부적으로도 여권의 이 같은 분위기에 적지 않은 압박을 느끼는 것으로 전해졌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와 국회 모두 구속력 있는 재정 준칙을 원치 않는 부분이 있다”면서 “선언적 수준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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