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인 상품을 선보이며 은행권의 메기 역할을 자청했던 카카오뱅크가 최근 특허청에 상표권을 무더기 등록했다. 기존 수신 상품과 관련된 유사 상품명뿐만 아니라 카뱅 업무를 지칭하는 신조어 등을 포함한 상표권 수는 50여개에 달한다. 브랜드명 정도를 출원했던 기존 은행권 관행과는 다른 이례적 행보로 카뱅만의 차별성을 드러내고 혁신금융에 속도를 내고자 하는 자신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일 특허청 키프리스에 따르면 카뱅은 지난달 24일 하루에만 54개의 상표등록출원서를 냈다. ‘카뱅 용돈박스’ ‘카뱅 AI저금통’ ‘시크릿박스’ ‘카뱅 통장’‘오픈모임통장’ 등 기존 수신 상품과 관련 있는 상품명이 주를 이뤘다. 수신 상품명 외에 ‘카뱅 미’ ‘카뱅 찬스’ 등 카뱅을 활용한 신조어도 접수했다.
카뱅 관계자는 “24일 출원한 상표권들은 신규 상품 출시와는 무관하며 기존 상품인 ‘세이프박스’ ‘저금통’ 등과 관련해 유사 상품명, 상품명 불법 도용 등을 차단하기 위해 관련 단어까지 선제적으로 접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 대표 송금업체 벤모의 간편송금 서비스가 보편적으로 이용되면서 벤모로 송금하라는 뜻의 ‘벤모 미(Venmo Me)’라는 신조어도 통용되고 있어 ‘카뱅 해’ ‘나에게 카뱅으로 이체해’라는 의미의 ‘카뱅 미’와 ‘카뱅으로 한다’는 뜻의 ‘카뱅 찬스’ 등의 단어도 출원했다”고 설명했다.
카뱅의 파격적인 상표권 행보는 금융권에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그동안 은행들도 꾸준히 상표권을 등록해왔지만 주요 브랜드명이나 신규 서비스명에 한해 출원하는 수준이었다. 브랜드와 관련한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고 유사 상품 등록을 방지하기 위해 상표권을 등록하는 만큼 카뱅이 자체 상품을 떠올릴 수 있는 유사 상품 등장에는 강경 대응하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미 다른 산업군에서는 유사 상품명, 도용 등 상표권 침해 사례가 상당해 등록 주체 기업이 출시 예정인 상품명 외에 유사 상품명까지 등록하는 경우가 있다”며 “변화에 소극적이었던 은행들도 최근 경쟁이 치열해져 카뱅이 상표권 등록을 통해 주요 상품과 유사한 상품의 등장을 차단하고 자체 상품의 경쟁력을 공고히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카뱅은 지난 2017년 출범 이후 정기적으로 혁신 상품을 내놓으면서 보수적인 은행권의 변화를 주도했다. ‘26주 적금’과 ‘모임통장’은 대표 흥행작으로 꼽힌다. 26주 동안 매주 1,000~1만원씩 금액을 늘려 납입하는 자유적금인 ‘26주 적금의 누적 개설 건수는 출시 2년 만에 560만좌를 돌파했다. 카카오톡 기반으로 회비를 관리하는 모임통장은 출시 1년 6개월 만에 660만명의 이용자를 불러모았다. 지난해 선보인 잔돈 모으기 서비스 ‘저금통’의 가입자도 출시 2주 만에 106만명을 넘어섰다.
카뱅은 주요 상품의 경쟁력과 탄탄한 실적을 바탕으로 올 하반기부터 기업공개(IPO)를 위한 실무 준비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카뱅의 올 2·4분기 당기순이익은 26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93%나 급증했다.
/이지윤기자 lu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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