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주요 시중은행의 가계 신용대출이 한 달 만에 4조원 넘게 급증했다. 유례없는 증가세다. 초저금리에 잇단 부동산 대출 규제 강화로 부족한 주택 매매자금을 신용대출로 충당하는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이 성행한데다 신용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하는 ‘빚투(빚내서 투자)’ 광풍이 이어진 결과로 보인다. 폭증세를 보이는 신용대출에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 조짐을 보이면서 직장인들 사이에서 ‘일단 받고 보자’는 움직임도 빨라졌다.
2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은행의 가계 신용대출 잔액은 124조2,747억원으로 전달보다 4조704억원 늘었다. 이들 은행의 월간 신용대출 증가액이 4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8% 늘어난 것으로 지난해 평균 증가율(6.4%)의 3배, 전월 대비 증가액으로 봐도 최근 4년 평균(6,092억원)의 7배 가까이 뛰었다.
이례적인 대출 급증에는 부동산 규제 강화 및 저금리와 맞물려 ‘영끌’ 해서라도 집을 사려는 ‘패닉 바잉(공황 구매)’ 현상이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나날이 치솟는 집값에 불안감을 느끼고 집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이 정부의 부동산 대출 규제에 막힌 주택담보대출 대신 상대적으로 느슨한 신용대출을 끌어다 썼다는 분석이다.
초저금리 기조로 신용대출 금리가 이례적으로 낮아지면서 ‘빚투’도 성행했다. 8월 말 기준 주요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최저 연 1.75~3.6% 수준이다. 싼 금리로 돈을 빌려 주식 강세장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다. 이날까지 이틀간 진행된 카카오게임즈 청약 증거금으로 쏟아진 58조원 넘는 자금 가운데도 신용대출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청약 첫날이었던 1일 하루 동안에만 1조8,034억원 불어났다. 8월 한 달 증가액의 절반에 이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가 워낙 낮다 보니 일단 받아놓고 보자는 식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거나 신용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공모주 청약에도 적잖이 흘러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중순 과도한 신용대출 증가세에 “각별히 관리하라”며 구두경고를 날린 것도 ‘막차’ 심리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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