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펀드’ 조성 방안을 놓고 다시금 금융권이 정치논리에 휘둘리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부는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정책 펀드라고 강조하지만 금융산업은 전형적인 규제산업인 만큼 금융기관이 사실상 정부의 눈치를 보며 비자발적 참여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뉴딜펀드가 민간의 팔을 비틀어 생색은 정권이 누렸던 이명박 정부의 ‘녹색펀드’,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처럼 시작만 화려했던 ‘관제펀드’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의 뉴딜펀드 조성에 금융투자 업계는 겉으로는 환영의 목소리를 내며 적극적인 참여를 다짐했으나 속내는 복잡하다. 일단 부담이 만만치 않다. 업계에서는 이미 기간산업안정기금·증시안정기금 등의 명목으로 적지 않은 돈을 출자해왔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출만기와 이자상환 유예를 6개월 추가 연장했다.
정부의 정책 기조가 나올 때마다 화답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산업은 여전히 관치와 규제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집권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어떤 법안도 통과시킬 수 있는 의석 구조여서 금융기관은 정부의 눈치를 더욱 살핀다. 이런 상황에 나온 대규모 투자 계획을 민간이 거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익명의 금융권 관계자는 “이런 식의 정책펀드 나올 때마다 부실이 생길 수도 있고, 자금이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가지 않을 리스크도 있다”며 “은행에서 판매하다가 불완전 판매 이슈가 또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원금 손실을 은행이 모두 보상하라고 권고한 라임펀드 사태를 예로 든 것이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면 코로나, 뉴딜이면 뉴딜, 이렇게 금융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라면 금융사들이 지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달라”며 규제 완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뉴딜펀드처럼 정부가 앞장섰던 관제펀드가 용두사미로 끝난 점도 곱씹어볼 대목이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에서는 40개가 넘는 녹색펀드가 출시됐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 발언 이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에 통일펀드가 우후죽순 등장했다. 이들 펀드는 출시 직후 정부의 지원 아래 자금이 몰렸고 수익률도 고공행진을 했지만 정권교체 이후 동력이 끊기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대부분의 자금이 이탈하면서 펀드 규모는 쪼그라들었고 수익률도 저조한 상태다. 펀드 출시에 따른 성과는 정부 차원의 치적으로 평가받지만 투자했던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오히려 나빠졌다. 비판은 금융기관이 질 수밖에 없어 민간의 고민은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김광수기자 br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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