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IMF)도 거뜬히 극복했던 산단이었는데…. 이제는 마스크 공장들만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최근 찾았던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 이곳에서 40년 넘게 일해온 공인중개사 A씨는 “이번에는 정말 아닌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970~1980년대만 해도 구미산단에 다닌다고 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갈 정도였다. IMF 때도 몇몇 공장의 주인이 바뀌기는 했지만 국내 생산과 수출을 책임진다는 자부심이 강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일감이 더 줄어든 산단은 과거의 생기를 찾아볼 수 없다. A씨는 “이대로 가다가는 점점 슬럼화돼 죽은 도시가 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죽어가는 구미 산단의 ‘증거’로 그는 빼곡히 들어찬 40여곳의 마스크 공장을 가리켰다. 일감이 줄어들어 떠난 빈 공장 자리나 기존 사업을 접고 당장 돈이 되는 마스크 공장을 짓다 보니 어느덧 50곳에 육박하게 됐다. 자부심 강했던 구미 산단은 ‘마스크 공단’으로 전락했다. 섬유에서 마스크 사업으로 전환한 업체 대표는 “마스크가 내 마지막 사업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마스크를 만들어 파는 것마저 경쟁력을 잃게 되면 수십년간 버텨온 공단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해온 감원에도 한계가 왔다. 이미 구조조정을 할 직원조차 남아 있지 않은 곳이 수두룩하다. 하루라도 공장을 놀리지 않으려면 하나 남은 아파트마저 저당 잡히거나 팔아야 한다. 고용유지지원금·긴급경영안정자금 등 정부 지원도 그때뿐이다. 되레 좀비 기업만 연명시키고 구조조정을 막는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죽어가는 공단을 살리기 위해서는 예상되는 모든 논란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마음으로 무엇이든 해야 한다. 현장에 와보니 지금이 바로 그때다. now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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