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를 빈곤으로 몰아넣은 페론주의는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위력을 발휘하며 나라를 흔들고 있다.”
미국의 격주간지인 내셔널리뷰는 한때 경제 대국이었던 아르헨티나의 몰락을 진단하면서 과도한 재정지출로 상징되는 페론주의를 가장 큰 이유로 지목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에 대해 산업구조 변화,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 이후 정치인의 실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재정지출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페론의 포퓰리즘이 결정타였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 지난 1946년 페론 정권이 들어선 후 공공지출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46년 국내총생산(GDP)의 25%였던 정부지출은 1948년에는 40%를 넘어섰다. 시중에 어마어마한 돈이 풀리자 물가 상승도 뒤따랐다. 1946년 19% 미만이었던 물가상승률은 5년 만에 50%를 넘어섰다.
재정이 파탄 나면서 1955년 페론 정권은 실각했지만, 페론주의의 불꽃은 꺼지지 않은 채 지속됐다. 이미 정부 지원에 익숙해진 국민들에게 다른 대안을 내놓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론주의 기반 좌파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부부 집권기인 2003년부터 2015년까지 아르헨티나 경제는 더 피폐해졌다.
이 기간 정부가 지급하는 연금과 월급은 두 배로 올랐으며, 정부에서 연금이나 월급을 받는 국민은 40%에 달했다. 저소득층에는 매월 일정액이 지급됐다. 모든 학생들에게 최신 모델의 넷북이 무상지급되기도 했다. 페론주의의 여파 등으로 아르헨티나는 지금까지 여덟 번째 국가부도(디폴트)를 선언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부채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평가했다.
포퓰리즘이 경제성장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2015년 정권 교체를 통해 친기업 정책을 기치로 내건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을 선출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또다시 중도좌파 성향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당선됐다. 내셔널리뷰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비대해진 정부, 시장을 왜곡시키는 보조금 제도 등이 떨쳐 버릴 수 없는 인기영합적 유산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웃국가 베네수엘라 역시 한때 세계 1위의 석유 자원국이면서, 세계 5위의 석유수출국으로 남미의 최부국으로 떠올랐지만 포퓰리즘의 후폭풍을 피해가지 못했다. 1998년 우고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 베네수엘라는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베네수엘라 수출액의 80%를 차지하는 석유를 이용해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등을 시행하며 빈민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의 뒤를 이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역시 최저임금 인상과 무상주택 공급 약속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가난이었다. 화폐가치 폭락과 2,000%에 이르는 세계 최고 수준 물가상승률로 자력 갱생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포퓰리즘의 흔적은 남미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그리스는 유럽국가 가운데 재정이 튼튼한 편에 속했다.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20%대로 영국 등 다른 국가의 절반에 불과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1981년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가 이끄는 사회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서부터다. 총선 직후 파판드레우 총리가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주라”고 지시한 것은 포퓰리즘 정책의 신호탄이 됐다. 이후 그리스 정부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공무원 증원, 노동자 해고 제한 등의 정책을 폈다. 결국 그리스는 2010년 IMF와 유럽연합(EU)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다. 그리스 역시 아르헨티나처럼 포퓰리즘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정권 교체가 일어나기는 했지만 포퓰리즘의 영향은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통계 웹사이트인 ‘하우머치닷넷’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그리스의 국가부채비율은 GDP의 182%로 유럽 국가에서 가장 높다.
세계 8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가 중 3위 수준의 경제력을 갖춘 이탈리아 역시 과도한 재정지출 등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리스 다음으로 유럽에서 재정 건전성이 안 좋은 이탈리아는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부채 비율이 150%를 훌쩍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적자도 지난해 GDP 대비 1.6% 수준에서 올해는 11%선을 넘겨 1991년 이후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탈리아의 재정위험이 급증한 가장 큰 이유로 과다한 사회복지비용 지출을 꼽는다. 특히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집권 당시 복지 예산을 확대하며 이탈리아의 부채를 크게 늘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07년 기준 이탈리아의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중은 OECD 평균치인 19.2%보다 5%포인트 이상 높은 24.9%에 달한다. 그럼에도 이탈리아의 지니계수(소득불평등 지표)는 2008년 0.317에서 2016년 0.328로 악화했다. 실업률은 2008년 6.7%로 당시 OECD 평균(5.9%)과 비슷했으나 2018년에는 10.6%로 OECD 평균(5.3%)의 2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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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 부양책의 후유증...日 국가부채비율 200% 넘어
일본의 국가부채는 아베 신조 총리가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면서 급격하게 불어났다. 지난 2012년 말 재집권한 아베 총리는 대규모 부양책과 금융완화(양적완화)를 통해 경기회복을 꾀했다. 하지만 과도한 돈 풀기로 인해 부채는 점차 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일본의 국가채무비율은 무려 237.1%에 달했다.
고질적인 부채 문제는 코로나19로 한층 더 심각해지고 있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두 차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결과 올해 국가 지출은 사상 최대 규모인 160조3,000억엔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90조2,000억엔을 신규 국채발행으로 메우기로 하면서 국가재정의 부채의존도가 사상 최악인 56.3%까지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일본은행 심의위원을 지낸 기우치 다카히데 노무라종합연구소 대표 이코노미스트는 아베노믹스를 평가하면서 “금융완화가 결과적으로 거액의 재정지출을 야기해 국가빚을 늘렸다”고 지적했다. 아베 정권은 5년이나 미뤄놓은 기초적 재정수지의 2025년도 흑자화 달성도 사실상 불가능해져 다음 세대에 많은 부채를 떠넘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돈 풀기에 집중한 나머지 구조개혁에 실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본 정부는 내수시장 축소를 막겠다며 저출산 대책을 정책 우선순위에 뒀지만 지난해 출생아 수는 86만5,234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아베 총리는 과감하게 규제를 풀겠다고 공언해왔지만 시장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아베노믹스의 효과가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아 소비 활성화가 어려워졌다는 비판도 잇따른다. 근로자 1인당 평균 월급은 2013년 1월 약 26만9,937엔에서 올 5월 26만8,789엔으로 되레 감소했고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 역시 7월 기준 0%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구조개혁과 디지털화를 서둘러 주요7개국(G7)에서 가장 낮은 생산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사의를 밝힌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아베노믹스를 통해 20년 동안의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났고 400만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했다”고 평가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엔화 가치 하락과 주가 부양 같은 인위적 부양책을 통해 2차 대전 이후 두 번째로 긴 경기 호황을 이뤄냈다”면서도 “대기업 실적만 개선됐을 뿐 대다수 국민은 실감하지 못한 호황”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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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도 코로나 여파로 올 3.3조弗 재정적자
이는 GDP는 40.8% 성장하는 데 반해 부채가 65%나 폭증하기 때문이다. 실제 2020년 20조2,700억달러였던 부채는 2030년에 33조4,570억달러로 눈덩이처럼 커진다.
미국의 재정적자를 포함한 쌍둥이 적자 문제가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미국의 재정적자와 부채 증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당장 수조달러대의 경기부양책과 셧다운(폐쇄)에 따른 세수감소로 올해 재정적자만 3조3,11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는 그 폭이 1조8,100억달러로 줄어들 전망이지만 향후 10년 동안 매년 1조달러를 웃돌 것이라는 게 CBO의 분석이다.
월가에서는 달러화가 기축통화인데다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가 연 0.6~0.7%대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부채위기가 단기간에 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높은 부채비율이 달러화 약세를 부추기고 향후 위기 재발시 충분한 재정 집행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우려에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7월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의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박성규·김기혁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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