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기업규제 3법 개정과 관련해 찬성 입장을 표명한 후 재계가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기업 경영활동을 장려하고 기업 경영환경을 옭아매는 각종 규제를 걷어내야 할 보수정당의 대표가 오히려 기업을 옥죄는 법률 개정작업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김 위원장도 최근 국민의힘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발언을 언론이 과도하게 해석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일부 언론이 자신의 발언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면서 본질이 왜곡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상법 개정안 등에 대한 찬성 입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 위원장은 비례대표 의원으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았던 지난 2016년 9월 기업 총수 견제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이 앞서 2012년 새누리당 비대위 위원 시절에 내건 경제민주화 공약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도 상법 개정이었다.
이에 따라 경영계와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김 위원장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내년 재보궐선거를 앞둔 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중도진영 공략을 위해 이 같은 발언을 내놓을 수 있지만 그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경영계의 우려는 일파만파로 확산되는 상황이다. 야당 내부에서도 김 위원장이 기업규제 3법에 원론적 찬성 입장을 보인 데 대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정체성과 그동안 견지해온 당의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과거 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로서 보여온 행보에 대해 야당의 수장으로서 명쾌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의원은 “국민의힘은 기업 경영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그동안 각종 규제를 폐지하는 작업을 벌여왔다”며 “하지만 김 위원장이 기업 경영의 발목을 잡는 법안에 대해 찬성 입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을 알게 된 후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국민의힘, 보수의 정체성 지켜야”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김 위원장의 뜻대로 움직일지도 미지수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이날 공정거래법과 상법·금융그룹감독법 등에 대한 김 위원장의 개정 의지를 환영하며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것을 제안하면서 야당의 기류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김 원내대표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이 정강정책을 개정하며 약자와의 동행, 경제민주화 구현을 약속했으므로 이번에는 다를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한 것이 오히려 야당 의원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 내부에서는 “보수의 정체성을 지켜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추경호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김 위원장이 구체적이고 명확한 의사를 밝힌 것도 아니고 당의 방침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 경제환경이 좋지 않고 기업의 경쟁환경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에 기업에 힘을 보태주고 창의적·역동적으로, 활력 있게 경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소속 정무위 위원인 윤창현 의원도 “당의 입장이라기보다 개인 의견의 측면이 강하다고 보고 있다”며 “경제민주화, 재벌 구조 개혁의 필요를 총론적 관점에서 얘기한 것으로 본다”고 김 위원장의 소신과 당론이 다른 점을 지적했다. 실제 국민의힘 의원들은 21대 국회에서도 기업의 경영권을 보장하고 자율성을 높이는 개혁안과 법안을 내놓고 있다.
재계 “경영계 호소 안받아들여져 참담”
윤희숙 경제혁신특위 위원장은 10일 일반지주회사의 기업형벤처캐피털(CVC) 보유 허용 등 금산분리 완화를 혁신안의 하나로 내놓았다. 또 추경호 의원은 경영권 방어장치인 차등의결권과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 등의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법제사법위원회에 중점 처리법안으로 다뤄달라는 요청까지 했다. 경영계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개정안이 악용될 경우 기업들은 본연의 역할인 경영활동이 아니라 규제를 회피하거나 외부의 공격에 대응하는 데 힘을 소진해버릴 수 있다”며 “경영계의 호소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아 참담하다”고 고개를 떨궜다. /임지훈·김능현·구경우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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