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뉴타운을 대거 해제한 후 대안으로 도시재생이 등판한 지도 5년이 지났다. 2015년 서울시 첫 도시재생 사업지로 선정된 종로구 ‘창신·숭인’에는 외형적으로 보면 도시재생 의도에 맞는 결과물들이 나오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5년간 200억원의 비용을 투입한 결과 산마루 놀이터나 채석장 전망대,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등이 잇달아 문을 열었다. 문제는 도시재생을 통해 공공시설은 어느 정도 확충됐지만 거주민들이 체감하는 주거의 질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3년 전부터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는 한 주민은 “국회의원이나 외부 사람들이 방문할 때에는 도시재생 사업으로 만든 산마루 놀이터나 채석장 전망대만 간다. 그런데 그 일대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길도 넓고 깨끗한 곳이다. 바로 옆 골목으로만 들어가 봐도 낡은 주택과 계단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도시재생 한계 인지한 서울시, 반성론 솔솔=기자가 최근 찾은 창신·숭인동에는 노후 된 주택과 좁은 골목길, 가파른 계단이 여전해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길이 좁아 일반 차량은 물론이고 긴급 상황 시 소방차 등의 접근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서울시에서 계단을 깨끗하게 정비한 곳이 종종 눈에 띄었지만 노약자가 다니기 힘든 심각한 경사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서울시가 뉴타운 구역을 대거 해제하고 도시재생을 시작한 지 5년이 흘렀지만 주거환경 개선 효과는 미미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 산하 기관인 서울연구원에서도 최근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한 연구 보고서를 잇달아 발간해 눈길을 끌고 있다. 연구결과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에서 노후 주거지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신축이나 가로주택정비사업 등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아 추가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연구원에서 발간한 ‘도시재생활성화지역의 건축규제완화 실효성 제고방안’을 보면 장안평, 창동·상계, 세운상가 등 1단계 도시재생활성화구역으로 지정된 13곳에서 지난 5년간 신축된 건물 비율은 4.1%로 서울의 일반 저층 주거지(6.1%)보다 낮았다. 창신·숭인은 2.13%, 창덕궁 앞은 1.78%, 창동·상계와 해방촌, 세운상가는 0%대였다.
도시재생활성화지역의 경우 노후화된 건축물 정비를 위해 용적률, 건폐율, 주차장 설치, 건축물 높이 등의 건축 규제 완화 특례가 있지만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정비구역 해제지역에 대해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는 ‘가로주택정비사업’ 역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올해 3월 기준으로 준공된 사업지는 1곳, 착공된 곳은 12곳에 불과하다.
◇주민들은 “전면 재개발 말곤 답 없다”=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연구원은 규제 완화를 제안했다. ‘도시재생활성화지역의 건축규제완화 실효성 제고방안’을 연구한 윤서연 부연구위원은 개별 사업지의 특성을 고려한 추가적인 건축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희지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로주택정비사업 면적을 현행 1만㎡에서 3만㎡까지 늘리자고 제안했다. 5~6개 블록을 공동으로 개발하는 방식으로, 주차장과 공원 등 저층 주거지에 부족한 시설도 함께 마련하는 일종의 ‘중형 재개발’인 셈이다.
서울연구원의 연구가 반드시 서울시 정책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시재생 개선에 대해서는 서울시도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가로주택정비사업 규제 완화와 관련해서는 서울시도 법제화 및 시범사업 등을 연구원과 함께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주민들이 이러한 ‘도시재생의 확대’가 아닌 전면 개발을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창신동의 한 주민은 “집수리를 하고 싶어도 골목길이 워낙 좁아 공사 차량조차 들어올 수가 없다”며 “조금씩 고쳐서는 해결이 안 된다”고 재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면 개발을 원하는 곳은 창신·숭인뿐만이 아니다. 2017년 서울시가 직권으로 정비구역에서 해제한 후 3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들여 도시재생을 진행했던 종로구 사직2구역도 전면 재개발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사직2구역은 법정 싸움에서 서울시에 승소해 정비구역 지정 지위를 회복한 상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도시재생 초창기에는 주거환경 정비가 주목적도 아니었고, 이에 관련한 지원책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1차 도시재생 사업지들의 주거환경 개선이 크게 이뤄지지 못했다”며 “추후 소규모 주택정비사업 등을 만들었지만 이 역시 주택 소유자가 사업에 뛰어들 유인을 제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도시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라며 “주민들이 체감할 만한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서울시는 “도시재생사업지역에 대해 건축 관련 규제 완화와 기반시설 확충을 위해 국회 및 국토부와 지속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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