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마약을 복용한 운전자는 인명·차량 피해에 대한 사고부담금을 부담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부산 해운대에서 발생한 7중 추돌 교통사고의 원인이 운전자의 대마초 흡입으로 드러나는 등 한국도 더 이상 마약청정지대가 아닌 만큼 자동차보험의 표준약관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에서 사고부담금은 음주운전, 뺑소니 교통사고에 제한돼 적용되고 있다. 마약에 관한 사고 부담금 규정은 명시돼 있지 않다.
업계에서 마약에 관한 규정에 주목하는 것은 최근 부산 해운대 포르쉐 사고가 발생하면서다. 지난 14일 부산 해운대에서 40대 남성 A씨는 고속으로 차를 몰다가 교차로에서 오토바이와 그랜저 등 7중 추돌사고를 냈다. A씨는 동승자가 가지고 있던 대마초를 건네받아 흡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가 어떤 보험 상품에 가입했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표준 약관에 따라 A씨가 사고부담금을 낼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법률상 대마로 인한 부분은 사고부담금을 가해 운전자에게 부과하지 못해 보험사가 전부 다 보상해야 하는 구조”라며 “(운전자에는) 할인, 할증 부분에서 패널티를 부과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운전자들이 가입하는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과 임의보험으로 구성된다. 의무보험의 보상범위는 대인 사망 기준 1억5,000만원 이하, 대물 손해액 2,000만원 이하로 이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임의보험까지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표준 약관에서는 음주운전·뺑소니의 경우 운전자에게 의무보험에서 사고부담금으로 400만원(대인 300만·대물 100만)을, 임의보험에서 1억5,000만원(대인 1억원, 대물 5,000만원)을 추가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과거에는 의무보험에만 사고부담금을 부과해 임의보험에서는 음주운전 사고 가해자라고 해도 사고부담금이 없었다. ‘윤창호법’으로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임의보험에도 사고부담금이 도입됐지만 마약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각지대인 셈이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마약으로 인한 교통사고 발생이 많지 않아 약관에 관련 내용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이제라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업계의 관계자는 “마약도 음주와 마찬가지로 반사회적 행위인 만큼 동일하게 취급할 필요가 있다”며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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