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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신 "상법, 기업활동 다루는 헌법…임대차법처럼 졸속·일방처리 안돼"

[서경이 만난 사람-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

'선한 의도'로 최저임금 올렸지만 되레 비정규직에 '毒'돼

理想만으로 기업규제3법 통과땐 고용·투자 위축 불보듯

경기불황에 코로나쇼크 겹쳐…L자형 장기침체 각오해야

<서경이만난사람>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 부회장./오승현기자 2020.09.18




권태신(사진)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한국경제연구원장)은 지난 15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러 국회로 달려갔다. 거대 여당은 그렇다 쳐도, 재계가 최후의 방어선으로 여겼던 제1야당의 수장까지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제·개정에 공개적으로 동조하고 나서자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절박한 심정이었다.

권 부회장은 18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상법은 기업활동에 있어 헌법과도 같다”며 “시장경제 체제에서 기업활동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상법 개정은 기업들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그는 한 시간가량 인터뷰하면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기업규제 3법’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법 통과로 인한 기업 경영활동 위축은 투자 감소와 고용시장 위축으로 이어져 결국 그 피해를 국민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안 그래도 중증 기저 질환을 앓고 있는 우리 경제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실을 무시한 부동산 임대차 3법(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계약갱신청구권제)이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덜컥 통과돼 부작용이 속출했던 것처럼 이들 법안도 졸속 처리돼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권 부회장은 “여야 합의 없이, 이해관계 직접 당사자인 기업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통과될까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대담=서정명 산업부장 vicsjm@sedaily.com

감사위원 분리선출, 투기자본만 좋은 일 시키는 것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6,470원이던 최저임금은 올해 8,590원으로 3년 만에 32.8% 올랐다. 시장의 감내 수준을 훨씬 넘어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업주들은 직원들을 내보냈다.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해주겠다며 편 선한 의도의 정책이 되레 비정규직 고용 취약계층을 집중적으로 때렸다. 권 부회장은 기업규제 3법 개정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상법 개정으로 대주주의 전횡을 막아 소액주주를 보호하겠다는 아주 이상적인 생각만 하고 있다”며 “가난한 근로자를 보호하겠다며 최저임금을 올렸더니 어떻게 됐나. 영세 자영업자들이 감당이 안 되니 일자리를 아예 없애버렸다”고 말했다. 공정을 내세워 기업규제 3법 입법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그 폐해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처럼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는 주장이다.

당정이 추진하는 기업규제 3법은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속고발권 폐지, 지주회사 지분율 기준 강화,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같이 기업 경영의 자율성과 적극성을 위축시키는 조항들이다. 권 부회장은 특히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에 기업들이 상당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면서 “국회에서 이들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데도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처리해 기업을 옥죄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처음부터 분리해 선출하는 제도다. 이때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3%로 제한된다. 재계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가 도입되면 외국계 헤지펀드로 대표되는 투기자본의 국내 기업 공격이 상시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마음만 먹으면 지분 쪼개기를 통해 이사회에 진입할 수 있고 경영 간섭, 주요 정보 빼내기 등의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04년 외국계 펀드인 소버린은 SK 주식 14.99%를 확보, 지분율을 2.99%씩 보유한 5개로 펀드를 쪼갰다. 이는 최대로 행사할 수 있는 지분율이 3%로 묶여 있는 최태원 SK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했다. 권 부회장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가 도입되면 대주주 지분율이 아무리 30%, 50%가 돼도 위원 선출에 행사할 수 있는 지분율은 3%밖에 안 된다”며 “투기 자본만 좋은 일 시켜주는 이 일을 왜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400억 투기세력이 삼성 계열사 7곳 소송 가능



근본적으로 시장경제의 근간을 허문다고도 했다. 권 부회장은 “시장경제의 핵심은 주주권”이라며 “자유민주주의에서 투표는 모든 사람이 한 표씩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처럼 시장경제에서는 갖고 있는 주식 수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일갈했다.

모회사 지분을 1%(상장사 0.01%) 이상만 가져도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역시 부작용이 불 보듯 뻔하다. 권 부회장은 “모회사 주주가 본인이 출자도 하지 않은 자회사에 위협 소송을 할 수 있다”며 “이는 경영권 침탈이나 단기차익을 노린 투기자본의 기업 압박용 수단이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다중대표소송을 걸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400억원에 불과하다”며 “투기자본 세력이 400억원만 있으면 삼성전자와 그 자회사 7곳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LG그룹의 경우 12억4,000만원만 있으면 지주사인 ㈜LG 지분 0.01%를 확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5개 자회사에 대한 소송 제기가 가능해진다.

권 부회장은 “다중대표소송제의 남용 가능성 때문에 영국과 독일·프랑스 등 주요 국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미국과 일본은 ‘경제적 일체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고 말했다. 일본회사법 847조에 따르면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한 경우 등에서만 다중대표소송이 가능하다. 캐나다와 호주는 아예 법원의 허가가 있어야 제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권 부회장은 “우리나라에서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할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추진되는 지주사 지분율 강화(상장 20→30%·비상장 40→50%)와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상장 여부 관계없이 총수일가 지분 20% 보유)는 상호 모순된다고 꼬집었다. 권 부회장은 “정부 정책에 순응해 자회사의 지분율을 높인 지주회사의 많은 자회사들이 강화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며 “지분을 더 가지라고 해놓고 일감 몰아주기 대상으로 몰아 규제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지주사 규제 강화와 일감 몰아주기 규제 자체도 그 각각 문제라고 봤다. 그는 “시스템통합(SI), 물류, 유지보수 소모성 자재(MRO) 분야 업무를 회사 내부에서 할지, 외부에 맡길지는 경영 판단의 문제인데 이것까지 규제를 하려고 든다”고 강조했다. 지주사 규제 강화에 대해서는 “과거 정부는 상호출자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지주사체제 전환을 장려했다”면서 “이제 와서 지주사를 하려면 자회사 지분을 더 많이 가지라고 하는 것은 정부의 자가당착”이라고 지적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34개 상호출자제한기업 중 16개 비(非)지주사 집단이 지주사체계로 전환할 경우 30조원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분석됐다. 권 부회장은 “대기업들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나 고용 창출이 아닌, 지분 매입에 써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경제 L자형 장기침체 각오해야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로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급감한 와중에 추진되는 기업규제 3법이라 재계의 걱정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상황 또한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이기도 한 권 부회장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크고 작은 충격이 반복되는 양상”이라며 “낙관적 전망도 있지만 바이러스 변이와 부작용 우려 등을 감안하면 내년까지도 전 세계가 코로나19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경연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2.3%로 보고 있는데 현재 추가 하향을 검토하고 있다. 권 부회장은 “대내적으로 경제체질이 부실화하던 중에 코로나 충격이 겹쳤기 때문에 ‘V자 반등’은 어렵고 ‘L자형’ 장기침체를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를 사실상 외발로 지탱하고 있는 제조업 경쟁력이 뒤처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권 부회장은 “10대 제조업 중 자동차와 기계장비, 1차 금속, 금속가공, 고무·플라스틱 등 5개 업종의 생산능력이 정체 또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들 업종의 고용 비중이 60%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고용창출 효과가 큰 제조업 위축은 일자리와 지역 경제에 치명적이다. 그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기업 관련 규제를 개선해 경쟁국 대비 제조업 경영환경의 비교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친기업적인 경제개혁을 통해 기업들의 투자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노동개혁(주52시간제, 최저임금 차등화) △규제개혁(네거티브 규제로 전환) △세제개혁(소득·법인세 체계 개편)을 정부에 제안했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정부의 재정정책에 대해서는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지금과 같은 형태의 ‘돈 뿌리기’는 낭비라고 지적했다. 권 부회장은 “위기 상황에서 성장률을 방어하기 위해 재정을 풀어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재정 풀기는 생산성을 올려 미래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관료 출신인 그는 “예전에는 예산 몇 십 억 아끼려고 새벽까지 토론하고 했는데 지금은 100조원, 200조원 넣는 게 어렵지 않게 됐다”며 “결국 국민 세금을 쓰는 것인데 너무 무책임하게 재정운용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정 건전성 악화 우려에 대해서는 “나랏빚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면서 “더 걱정되는 것은 국가채무가 외국에 비해 낮아서 괜찮다는 인식”이라고 염려했다. 정부·여당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0%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0%보다 낮다는 점을 확장재정 정책의 논리 근거로 제시한다. 권 부회장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특성을 감안할 때 국가채무비율은 40%가 적정하다”고 말했다./정리=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사진=오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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