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관람객으로서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전시가 반려견에게도 관람을 허용했다. 이 전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국공립 기관에 휴관조치가 내려지면서 유튜브 중계로 온라인 선공개됐다가 28일 재개관과 함께 실제 전시장에서 관람할 수 있게 됐다.
미술관 내 잔디공간인 전시마당에는 조각가 김용관의 ‘알아둬, 나는 크고 위험하지 않아!’가 설치됐다.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개를 위한 도구’에 대한 상상이 구현된 작품이다. 잘 굴러다니고 물어도 다치지 않으면서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고 푹신해 파묻힐 수도 있는 뭐라 정의하기 어려운 도구들이 개를 위한 작품으로 선보인다. 김 작가는 적록색맹으로 파란색과 노란색만 인식하는 개를 위한 작품들도 함께 내놓았다.
정연두 작가는 애견사료를 재료 삼아 ‘인류를 구한 영웅견 군상’을 제작했다. 1925년 알래스카에서 혹한을 뚫고 개썰매를 끌고 다니며 면역 혈청을 옮겨 전염병으로부터 아이들을 구한 개 토고와 발토의 실제 이야기를 구현했다. 작가는 개들이 좋아하는 사료로 인류를 구한 영웅견을 만들어 관람하러 온 개들도 공감(?)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동시에 전염병의 위기가 동물로부터 왔다는 점과 동물이 인류를 구했다는 역설적 상황도 보여준다. 영국작가 데이비드 슈리글리 등 국내외 21팀의 작가가 참여해 퍼포먼스를 포함한 25점의 작품과 영화 3편을 보여준다.
휴관 기간 중 서울관 미술관마당에 먼저 설치된 노랑·파랑·하양의 구조물은 삼청로를 지나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조각스카웃의 작품 ‘개의 꿈’으로 도그 어질리티(Dog Agility·장애물경주 방식의 개와 인간의 협동스포츠)에 사용되는 기구들을 개가 식별할 수 있는 색상의 추상적 조각 형태로 제작한 것이다. 개들을 위한 미래의 숲인 셈인데, 개들이 놀이터처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관람객’ 반려견은 전시 기간인 10월25일까지 한시적으로 이번 전시가 열리는 7전시실과 미디어랩,전시마당과 미술관마당에 출입할 수 있다. 평소 시각장애인의 안내견을 제외한 개·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은 전시장 입장을 할 수 없다. 다만 안전사고를 우려해 맹견 출입은 금지했다. 반려견 한 마리당 한 명 이상의 반려인이 동반해야 하며 실내에서는 반려견의 기저귀착용이 권장된다. 반려견과 동행하는 관람객은 자신의 코로나19 발열체크와 반려견 입장안내 문답표를 모두 챙겨야 한다. 이번 전시를 담당한 성용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가족 구성원과 공동체의 일부인 반려동물이 현대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미술관의 개방성과 공공성의 범위에 대해 고민했다”면서 “인간중심의 미술관에서 인간 아닌 비인간의 존재를 생각하는 계기이자 고민의 기회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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