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제조의 대명사인 삼광글라스(005090)가 52년 만에 ‘삼광’이란 간판을 ‘SGC’로 교체하게 됐습니다. 6개월여간 추진해오던 군장에너지·이테크건설(016250)과의 3자 합병이 지난달 29일 우여곡절 끝에 주주총회를 통과한 겁니다.
특히 회사 이름에 ‘글라스(Glass)’ 즉, 유리도 떼게 됐습니다. 집중할 사업 분야를 전면적으로 바꾼 건데요. 대신 ‘SGC에너지’를 지주사로 ‘에너지’를 앞세우게 됐습니다. 과연 유리를 만들던 회사가 어떻게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일까요? 또한,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문제는 없을까요?
유리 시장 개척자...시대 흐름에 발목
삼광글라스는 1967년 ‘삼광초자공업’에서 시작됐습니다. 맥주병, 소주병 등 유리병을 주로 제조하면서 1971년에는 삼광유리공업을 거쳐 1994년 OCI에 인수됐습니다. 이때 ‘삼광유리’로 사명을 바꿨다가 2013년에 마지막으로 삼광글라스로 이어왔습니다.
삼광글라스의 브랜드가 대중에 제대로 각인된 건 바로 ‘글라스락(Glasslock)’입니다. 2005년 출시된 글라스락은 유리 밀폐 용기 시장을 독보적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문제는 B2B 사업이었습니다. 수입 음료와 수입 맥주 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국내에서의 병과 캔 생산량이 한계에 다다른 겁니다. 2010년대 초중반 삼광글라스의 매출은 3,000억원 안팎으로 유지됐지만 영업이익은 계속 줄어들다가 2017년 창사 반세기 만에 첫 적자 실적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러자 삼광글라스는 과감히 캔 사업 부분을 분할해 한일제관에 매각합니다.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이었던 셈인데요. 다행히 2019년에 3년 만에 적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유리 사업에 집중하고 글라스락 등 생활용품 사업을 키운 게 실적 개선에 도움이 됐습니다.
그룹 미래 먹거리로 택한 3자 합병
이 가운데 상장(IPO)을 추진하던 군장에너지가 등장합니다. 삼광글라스의 계열사임에도 열병합발전 등 사업으로 약 5,000억원 매출을 기록 중이던 군장에너지는 2018년부터 별도 기업 공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장 작업은 2년여간 늦어져 지지부진한 상태였는데요. 어찌 보면 3자 합병은 삼광글라스 그룹 전체 차원에서 보면 상호 필요 사항이 맞아떨어졌습니다. 군장에너지는 합병 회사를 통해 우회 상장하고, 그룹사 전체에는 신사업으로 구조 개편하는 일석이조인 겁니다.
그래서 지난 3월 삼광글라스는 투자부문과 군장에너지, 이테크건설 투자 부문이 합병해 지주사인 ‘SGC에너지’로, 삼광글라스의 기존 사업부문은 ‘SGC솔루션’, 이테크건설 사업부문은 ‘SGC이테크건설’로 분할·합병을 추진했습니다.
코로나19 겹쳤는데 삼광글라스만 저평가
합병을 위한 증권 신고서가 나오자 삼광글라스의 소액주주들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주가가 급격히 하락한 때를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해 이테크건설이나 비상장사인 군장에너지와 합병가액을 산정했다는 비판입니다.
소액주주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신영자산운용이나 디앤에이치투자자문 등은 지속해서 합병비율 재산정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에서 두 차례 증권신고서에 정정을 요구했습니다. 합병 비율도 세 차례나 바뀝니다. 삼광글라스·이테크건설·군장에너지의 조정된 합병 비율이 처음 1대 3.88대 2.54에서, 1대 3.22대 2.14로 내린 데 이어서 마지막에는 산정 기준을 기준 시가에서 자산 가치로 변경해 1대 2.57 대 1.71까지 조정됐습니다.
강경하던 소액주주 중에서도 점점 이탈이 발생하면서 지난 9월 29일 임시 주주총회에서는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표를 얻어 3사의 분할·합병안이 통과됐습니다. 10월 31일 합병 등기를 마치고 11월 신설법인이 공식 출범합니다.
‘꼼수 승계’ 의혹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주목해야 할 점은 주주총회 직전인 지난 24일 삼광글라스의 지분 약 5%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공식적으로 분할·합병에 반대 의견을 표했다는 겁니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 관계자는 “합병의 취지와 목적에 대해서는 공감하나 합병 비율, 정관 변경 등을 고려할 때 삼광글라스의 주주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는데요. 위법은 아니더라도 현행 기준 안에서 세 차례 합병 비율이 고무줄처럼 변동될 수 있는 것처럼, 분명 소액주주들은 합병 과정에서 힘을 쓸 수 없는 구조입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모색하는 단체인 사단법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도 “국민연금의 반대 의사결정을 지지한다”고 힘을 보탰습니다.
실제 합병을 통해 가장 지분이 크게 높아진 건 이복영 삼광글라스 회장의 2세들입니다. 장남 이우성 이테크건설 부사장은 지주사의 지분이 6.1%에서 19.2%로, 차남 이원준 삼광글라스 총괄본부장은 8.8%에서 17.7%로 늘어납니다. 반면 이 회장은 22.2%에서 10.1%로 줄어듭니다. 합병 작업을 통해 지분을 넘겨 꼼수로 경영권을 승계한다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는 구도입니다.
이달 시작되는 국정감사에서도 SGC그룹의 합병 문제도 거론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사자인 소액주주는 물론 국민연금과 금감원까지 합병 과정에 공식 문제 제기한 맥락에서 위법성을 떠나 적절한 기업문화였는가부터 비판이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삼광글라스가 새 사업의 미래를 위해 에너지 기업으로 힘겹게 변신한 만큼 주주 권익을 위해서는 어떤 경영 활동을 펼칠지 이목이 쏠립니다.
/이재명기자 now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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