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황제의 집무공간이던 덕수궁 즉조당. 안쪽 황제의 자리에는 장수와 부귀를 상징하는 10폭짜리 ‘백수백복자 자수병풍(百壽百福字刺繡屛風)’이 놓였다. 비단 바탕에 자수로 ‘수(壽)’자와 ‘복(福)’자를 번갈아, 청색·적색·녹색의 전서체로 새겼다. 고종은 이 명품 병풍을 외국인들에게도 다양하게 선물했다. 왕의 의자 겸 이동식침상으로 사용된 평상(平床)에는 겨울이면 보료, 여름에는 왕골자리가 깔렸다. 특히 왕골자리와 방석은 말발굽 무늬인 ‘마제별문’이 화려함을 더했다. 그 앞에는 왕이 글을 쓰거나 문서를 읽을 수 있는 경상(經床)이 놓였다. 방의 바깥쪽 신하의 자리에는 경상과 더불어 붓과 먹 보관함인 ‘연상(硯床)’이 배치됐다.
밤까지 국사를 논의할 때면 등을 사용하는 조명기구 ‘유제등경’을 켜고 ‘철제은입사 촛대’에 불을 밝혔으리라. 몸체 부분은 철로 만들고, 문양 자리에 은실을 두들겨 넣어 장식하는 ‘은입사’ 기법은 정교함의 결정체였다. 이처럼 화려했으나 소실됐던 왕의 집무실 물품들이 프랑스 명품브랜드 에르메스와 전통문화의 현대적 계승을 모색하는 재단법인 아름지기에 의해 되살아 났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는 에르메스 코리아, 아름지기와의 민관 협업을 통해 재현한 덕수궁 즉조당의 집기류를 오는 11일까지 한시적으로 시범 공개한다.
그간 훼손되거나 멸실된 궁궐 건축 문화재에 대한 복원과 보수는 꾸준히 이뤄졌지만 당시의 내부 생활상을 유추할 수 있는 전각 내부의 물품에 대한 복원과 재현은 다소 미흡했다. 이에 문화재청은 궁궐 문화재의 효율적인 활용 방안과 관람서비스 개선을 위해 지난 2015년 에르메스와 ‘한문화재 한지킴이’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궁궐 전각 내부 집기 재현사업’을 구상했다. 아름지기의 주관 협력을 통해 이뤄진 덕수궁 함녕전 집기류 재현(2015~2017년)이 그 첫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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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덕수궁 즉조당 집기 재현 사업을 지난 2018년 착수해 최근 완료됐다. 덕수궁 즉조당은 조선 15대 광해군과 16대 인조가 즉위한 곳으로, 대한제국 초기 왕실 중심 공간인 정전으로 잠시 사용됐다가 이후 집무실인 편전으로 활용됐다. 이를 고려해 즉조당 집기류는 고종황제의 집무공간을 고려해 재현됐다. 물품들은 국내 박물관 등에 소장된 조선 시대 원형 집기들을 근거로 전문가들의 조언을 더했고, 국가무형문화재 등 분야별 전문 장인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국내에 원형이 전하지 않는 마제별문 왕골자리는 네덜란드 국립민족박물관이 소장한 우리 유물을 참조했다.
다시 태어난 즉조당 집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예방 차원에서 입장하지 않고 외부 창호 전면 개방을 통한 야외 관람으로 만날 수 있다. 덕수궁관리소 측은 “코로나19 방역 상황이 개선되면 일반 관람으로 전환해 직접 즉조당 내부로 입장해 집기를 관람하면서 전문 해설을 들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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