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대0’
국내에서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는 수입차와 국내 완성차 업체 수다. 정부가 국내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막으면서 90도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 스포츠 경기라면 심판이 특정 팀에 편파 판정을 한다고 문제를 삼을 상황이다. 국내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막자 혜택은 수입차 업계로 쏠렸다. 중고차 가격 방어, 브랜드 가치 상승, 신차 판매 증가 등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반면 국내 완성차 업계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는 수입차 브랜드는 메르세데스벤츠·BMW·아우디·롤스로이스·페라리·포르쉐 등 총 13개 업체에 달한다. 반면 국내 완성차 업계는 지난 2013년 중고차판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지정되며 시장진입이 막혀 있다.
수입차 업계는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 입지를 탄탄히 다지고 있다. 보유기간 5년 또는 주행거리 10만㎞ 미만의 무사고 차량을 매입해 엄격한 성능·상태 점검과 수리 등의 상품화를 거친 ‘제조사 인증 중고차(CPO)’를 판매하고 있다. 고객이 안심하고 중고차를 사고팔게 한 것이다. 이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독일 3사를 비롯한 6개 수입차 업체의 인증 중고차 판매 수는 2018년 2만4,577대로 2014년(4,586대) 대비 5배 이상 껑충 뛰었다.
반면 국산차 고객들은 제조사가 인증하는 고품질의 중고차를 구입할 기회 자체가 없다. 2013년 중고차판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지정되면서 국내 완성차 업체 등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시장 진출이 막혔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은 지난해 초 일몰됐으나 이번에는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이라는 벽을 만났다. 생계형 적합업종에 지정되면 앞으로 5년 동안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은 다시 막힌다. 업계에서는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 진출을 막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수입차 업체만 보호하고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중고차이기는 하지만 수입차는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소비자가, 국산차는 소득이 낮은 소비자가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 대기업 진입장벽이 결과적으로 고소득자 소비자만 보호하는 셈이다.
5년간 중고차 시장 진출이 막히면 국산차는 브랜드 가치 훼손을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 2017년식 제네시스 G80의 감가율은 30.7%에 달했다. 그러나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는 메르세데스벤츠의 E클래스는 25.5%, GLC는 20.6%에 불과했다. 수입차 브랜드는 자사 차량의 신차 판매부터 중고차 유통까지 책임짐으로써 품질 및 브랜드 가치 방어에 성공했지만 국산차는 이런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진입장벽의 폐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며 “진입장벽을 완화해 국산차와 수입차의 불균형을 없애고 소비자 이익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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