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제가 꼴등인 것 같고요. 제가 봤을 때는 BTS(방탄소년단)가 1등이고, 2등이 페이커, 3등이 손흥민, 4등이 저인 것 같아요.”
류현진 선수가 지난 7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 체육·예술분야 유명인 순위를 매겨달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나온 말입니다. ‘괴물’로 불리는 메이저리그(MLB)의 특급 투수가 겸양할 정도로 ‘K-팝(K-pop)’ 아이돌 그룹과 e스포츠계에서 페이커 선수가 갖는 명성은 대단합니다. 단지 해당 분야가 주류 문화로 주목받은 기간이 짧다고 해서, 이를 기존 스포츠 선수에 비해 못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죠.
‘롤드컵(LoL 월드 챔피언십)’ 우승만 3번, 한국 리그(LCK) 우승 9번. 압도적인 전적을 보유한 페이커 선수와 더불어 BTS가 신(新) 병역 특례 기준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BTS는 최근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인 ‘핫100’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 등 입상자에게 병역 특례 혜택이 주어집니다.
이에 일명 ‘BTS·페이커 입영 연기법’으로 불린 병역법 개정안으로 이들의 입영 연기가 실현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여왔습니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7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e스포츠가 미국에서 농구나 야구보다 시청률이 높은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입영 연기도 함께 고려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외에서는 우리나라를 게임 잘하는 국가로 인식하는데, 이는 국위선양이 아니냐”라며 “대중문화도 e스포츠도 최고의 역량을 보여주며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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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병역 특례가 절실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e스포츠는 일반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선수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게 중론입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 e스포츠 선수의 평균 연령은 20.4세, 평균 경력은 2.8년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스스로 평가한 기대수명은 5.3년입니다. 더군다나 게임은 ‘메타(경향성)’가 끊임없이 변하고, 주류 게임의 인기도 변화가 무쌍해 ‘폼(역량)’이 떨어지는 건 그야말로 한순간이죠. 사실상 30대에 접어들면 최고 기량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페이커 선수의 입영 연기, 가능할까요? 일단 당장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 의원이 최근 대표발의한 병역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e스포츠 선수를 대상으로 한 특례 조항이 결국 빠졌습니다. 전 의원 측은 페이커 선수와 BTS를 포괄할 수 있는 입법을 구상했으나, 주무부처인 문체부와 국방부 등에서 브레이크를 건 것으로 전해집니다. 병무청은 “대중문화예술 분야 예술요원의 병역 특례 편입은 공정과 형평에 맞지 않는다”며 이를 제외한다는 방침을 공표했습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e스포츠 위상의 변화입니다. e스포츠는 지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시범 종목으로 채택됐습니다. 2022년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에서는 최종 단계에서 아쉽게 제외됐으나, 이 역시 시간문제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일각에서는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발돋움할 거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실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측도 긍정적입니다. IOC는 e스포츠 조직과 대화를 이어가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정식 스포츠 국제대회가 되면 병역 특례 논의 역시 급물살을 타게 될 거란 전망입니다.
러시아와 중국은 e스포츠를 정식 스포츠로 인정하면서 선수들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 역시 게임의 무역수지 등 경제적 효과를 강조하며 게임, e스포츠 같은 한류 콘텐츠를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글로벌 펜데믹(대유행) 국면에서 올림픽조차 미뤄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e스포츠는 변함 없이 관객들을 만나고, 해가 다르게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한 시장조사업체는 올해 e스포츠 시청자를 4억9,500만명 규모로, 1조원이 넘는 수익을 올릴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방법은 없을지 운용의 묘를 살려볼 때입니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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