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강자’라는 프레임에 갇힌 반(反)기업 규제 법안이 국회에서 양산되고 있다. 문제는 기업 경쟁력을 좌우할 입법 추진 과정에서 정작 이해당사자인 기업은 들러리 취급을 받고 있는 점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13일 국무조정실 규제정보 포털에 따르면 21대 국회 들어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규제 법안은 이날 기준으로 총 568건에 달한다. 규제정보 포털은 국회에 발의된 법안 중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을 법제처가 분류해 공개하고 있다. 21대 국회 회기가 지난 5월30일 시작된 점을 감안하면 넉 달여 임기 동안 한 달에 약 142개의 규제 법안이 쏟아진 셈이다.
정부 입법으로 추진되고 있는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은 경영계 우려가 특히 크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시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최대주주 의결권을 3%로 묶는 상법 개정안은 대표적인 기업 규제 법안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주주 지분율을 높이라고 해서 높였더니 정작 감사위원 선임 때 의결권은 3%로 제한한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서울경제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중 비금융사 13곳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3% 룰 적용 시 제한되는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 가치가 5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상장·비상장 관계없이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 이상인 곳으로 통일하고, 해당 계열사가 50% 초과 지분을 가진 자회사로까지 규제 범위를 넓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효율성을 좇는 기업의 의사결정을 제약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86세대가 포진해 있는 집권 여당의 인식이 여전히 ‘노동자는 기업에 착취당한다’는 30~40년 전 시절에 머물러 있다”면서 “기본 인식이 이렇게 때문에 기업을 강자로 보고 이들을 규제하려는 법안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조법 개정도 기업의 의견은 듣는 둥 마는 둥 추진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명분으로 추진되는 노조법 개정은 해고자와 실직자의 기업별 노조 가입을 허가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 금지 규정도 삭제하도록 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인들을 만나서 무슨 얘기를 듣느냐보다, 그냥 만났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 같다”며 “보여주기 식으로 기업을 들러리 세운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정치권이 기본적으로 경제 논리보다는 표를 얻는 데 급급하기 때문에 과잉규제 입법 경쟁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정치인들이 남들보다 센 입법으로 선명성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다 보니 그 과정에서 기업은 피해를 입는 것”이라고 말했다./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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