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터넷 플랫폼, 바이오, 2차 전지 업종의 주가수익비율(PER)이 100배를 훌쩍 넘기는 경우가 나타나면서 PDR(Price to Dream Ratio)라는 개념이 주목받았다. PER,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기존 투자 지표로 주가가 설명이 불가능해지자 기업의 ‘꿈’의 크기를 통해 현 주가를 설명하려는 시도다. 한국투자증권은 국내 증권가에서 처음으로 PDR이라는 지표를 정의하고 그를 통해 기업 가치를 산정하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한국투자증권은 PDR 관련된 3건의 특허를 신청했으며, 향후 BBIG 산업 내 특정 기업에 대한 보고서에서는 PER·PBR 대신 PDR를 사용할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그간 성장성이 높은 기업에 대한 밸류에이션 지표는 변천을 거듭해왔다. 1990년대 말 미국에서 인터넷 기업의 붐이 일었을 당시 기업의 이익에 초점 맞춘 PER로는 IT 업종의 주가를 설명할 수 없게 되자 PSR(주가매출비율, Price to Sale Ratio) 이라는 새 지표가 등장했다. PER이 기업의 이익단에서 기업 가치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PSR는 매출의 크기로 평가하는 것이다. 신산업의 경우 초기 높은 투자 비용 등으로 당장은 적자를 내지만 잠재력이 큰 만큼 ‘이익’ 자리에 ‘매출’을 대입해 현 주가를 정당화시킨 것이다. 기업 가치평가의 권위자 에스워드 다모다란 교수는 “사업 초기 적자 발생 가능성이 높고, 기술과 인적 자산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터넷 기업은 PSR로 가치 평가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2010년 대 이후 FAANG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IT 기업의 주가가 랠리를 펼치면서 PSR의 설명력은 조금씩 훼손됐다.
14일 한국투자증권은 증권업계에서 처음으로 PDR로 밸류에이션을 시도하는 리포트를 발간했다. 한국투자증권이 개념적으로 정의한 PDR은 기업의 시가총액을 전체 산업 시장의 매출액에 해당 기업의 예상 점유율을 곱한 한 값으로 나눠 산출한다. 해당 산업의 전체 시장 규모를 뜻하는 ‘TAM(Total Addressable Market)’은 지리적, 부문별 확장성을 고려해 계산한다. 해당 수식을 통해 도출된 PDR을 통해 동종 기업들과 비교해 상대적 매력도를 파악하고, 기업의 본질가치에 ‘꿈’을 곱해 미래의 적정 기업가치를 구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투자증권은 해당 보고서에서 “카드사 Visa의 주가는 2008년 이후 지금까지 1,700% 넘게 올랐다”며 “2008년으로 되돌아가 산정한 PDR은 16.1~19.5배 수준으로, 당시 PDR 밸류에이션을 적용했다면 고평가 논란을 잠재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고성장 기업에 대한 PDR 밸류에이션으로 미래의 기업 적정가치를 구할 수 있다”며 “이를 현재가치로 할인하더라도 통상 밸류에이션으로 언급되는 숫자보다 큰 가치를 부여해 BBIG 종목에서 발생하는 주가 고평가 논란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투자증권은 해당 보고서에서 BBIG(배터리, 바이오, 인터넷, 게임) 산업의 PDR을 계산했다. 일례로 한국투자증권이 배터리 사업의 2030년 TAM을 249조원으로 책정했다. 여기에 2030년 예상 시장 점유율을 바탕으로 산출한 배터리 업체의 PDR은 LG화학 0.7배, 삼성SDI 1.1배이며 CATL은 1.7배 이다. 한국투자증권은 “배터리 회사에 대해서는 시장이 공감할 만한 기업가치 평가 방법이 정립되지 않았다”며 “산업 초기라 설비투자 규모가 크고 주요 회사들이 아직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생산설비에 가치를 부여하는 ‘설비투자 밸류에이션’이 사용되고 있지만 이는 2~3년 성장성 주목에 그친다”며 “배터리 산업에서 PDR은 10년, 20년 후 산업의 꿈을 정기적으로 수정하며 성정판이 얼마나 열려 있는 지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투자증권은 PDR을 특허청에 상표 등록 출원도 했다. PDR과 관련된 총 3건의 특허 출원을 냈으며 단순히 PDR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특허 출원을 냈다고 전했다. 윤희도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 ‘PDR’이라는 세 글자도 특허 출원을 했지만 이전부터 사용되던 개념이라 내부에서도 특허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며 “‘PDR’에 추가 첨가한 개념들에 대한 특허 인정을 기대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앞으로 PDR 배수를 꾸준히 산출하며 데이터를 쌓아갈 계획이다. 특히 BBIG산업 업종 내 5개 기업 리포트에서는 PER·PBR을 빼고 PDR로 대체하는 방안고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윤 센터장은 “한 달을 준비해 리포트를 발간했다”며 “처음 시도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으며 보완점을 반영해나가며 PDR을 연구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승배기자 ba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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