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대의 잠재력을 보유한 수소(H)에너지를 두고 미국과 유럽연합(EU)·일본·중국 등이 수소경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불꽃 경쟁을 벌이고 있다. 수소경제 규모가 향후 2조5,000억달러(약 3,000조원)에 이르고 3,000만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며 글로벌 산업과 에너지의 판도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전망에 이를 선점하려는 것이다.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육성해온 EU는 최대 60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며 일본은 내년 도쿄올림픽을 통해 수소경제의 선도국 지위를 전 세계에 알린다는 포부를 숨기지 않고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정책적 관심은 적지만 민주당이 장악한 캘리포니아주가 일찌감치 수소차 및 충전소 확대를 밀어붙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인 중국은 대륙에 수소산업 4대 거점을 지정해 수소 생태계 조성을 대형 국책사업으로 단숨에 밀어붙일 태세다.
수소경제로의 전환 기반이 탄탄한 EU는 지난 7월 ‘수소전략’을 발표하고 오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향해 에너지 시스템을 수소 중심으로 통합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이를 위해 EU는 2024년까지 현재 1기가와트(GW) 수준인 수소발전 설비를 6GW, 2030년까지 40GW로 늘리기로 했다. 최근 원전 1기당 1.4GW 규모여서 10년간 원전 30기와 비슷한 전기 생산을 수소로 대체하겠다는 목표로 1,000만톤의 수소 생산 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특히 EU는 전체 에너지 사용에서 2~3%인 수소 비중을 2050년까지 14%로 확대하기 위해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청정 수소 생산에만 1,800억~4,700억유로를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수소경제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EU는 수소경제를 앞당기기 위해 늦어도 2040년까지 내연기관차를 사실상 퇴출시킨다는 플랜을 세워놓고 착실히 이행해 (수소 투자에) 기업들의 호응을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2년 일찌감치 수소에너지 비전을 제시했던 미국은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주춤하는 양상이지만 수소 생산·운송·저장·이용은 물론 교육과 표준화 등 7대 분야의 세부 목표를 18년 전 세워 둔 저력이 만만치 않다. 특히 세계 7위 국가의 경제 규모와 맞먹는 캘리포니아주가 착실히 수소경제 이행을 추진해 10년 내 수소충전소 1,000기, 수소차 100만대 보급에 나서고 있다. 다음달 3일 실시될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앞서고 있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내년부터 미국의 수소산업 육성 발걸음은 더욱 빨라질 수 있다. 김종혁 대외경제연구원 미주팀 전문연구원은 “바이든 후보는 당선되면 청정에너지 계획에 4년간 2조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는데 수소 사용 확대가 주축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수소산업의 리딩 국가를 자임하고 있는 일본 역시 2014년 수소경제 전환을 공식화한 후 수소충전소 900개 건설, 연료전지 발전기 530만대 공급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올해 개최 예정이던 도쿄올림픽에서 수소와 관련한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내년으로 미뤄둔 상태다. 체육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은 올림픽 선수촌을 수소에너지로 운영해 전 세계에 일본의 청정 기술을 과시하려고 준비하는 듯하다”고 전했다. 아울러 일본은 10년 내 호주 및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국제 수소 공급망을 구축하기로 하면서 수소를 외교·안보 영향력 확대의 디딤돌로 활용하고 있다.
수소산업 육성에 미·일·유럽을 빠르게 추격하려는 중국 정부는 ‘수소 굴기’를 천명하고 2030년까지 수소차 100만대를 보급하는 한편 충전소 1,000기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수소차에 대한 구매세(10%)를 면제하고 연말까지만 시행할 예정이던 수소차 보조금도 2022년까지로 연장했다. 이와 함께 중국은 베이징과 상하이·광둥성·다롄을 수소산업 4대 거점으로 삼아 수소버스와 연료전지, 발전용 연료전지를 육성하고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하기로 했다.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은 “EU·미국·일본 등은 각각 수소경제에서 보유한 강점을 살려 수소산업을 키워가고 있다”면서 “경쟁국들이 중점 투자할 분야들을 잘 파악하면 국내 수소 관련 기업들의 수출 전략을 고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손철기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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