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처럼 곧게 빛이 쏟아져 내린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연기(수증기 및 인체 무해성분)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가늠할 수 없는 빛의 존재를 강조한다. 빛은 사물을 보게 하는 가시광선이나, 빛으로 인해 다른 빛이 보이지 않기도 하고 때로는 빛 때문에 눈앞이 아득해지기도 한다. 빛을 상자에 나눠 담았다. 3개의 금색 상자에. 심해의 바다 빛, 노을진 태양 빛. 검푸른 밤 공기를 느끼게 하는 상자 속 빛은 색으로 잘라 말하기에는 너무나 미묘해 ‘기운’이라고 부르는 게 적합하겠다. 이들은 빛의 삼원색(RGB·Red Green Blue)이라, 합치면 다시 흰 빛이 된다.
빛과 어둠을 주제로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고자 애써 온 설치작가 리경이 ‘천 개의 바람’이라는 제목으로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물줄기 같은 빛의 줄기는 각자 서로 다른 주기로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빛이 세기와 시간을 달리하며 강렬해지고 희미해지는 것이 마치 인간 삶의 주기 같다”면서 “셋 다 켜져 눈부시게 환한 살아있음의 순간이 있는가 하면 일제히 꺼져 죽어감이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고 말했다.
지극히 사적인 얘기지만, 작가는 3년 전 아버지를 여의었다. 딸은 미술가가 되는 것을 반대했던 아버지와 18년 가까이 냉랭한 사이로 지냈다. 위독하다는 소식에 황급히 달려갔건만 간발의 차로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뒤늦게 만져본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2년 가까이 죄책감에 짓눌리다 우연찮게 다른 차원의 우주를 관통하는 웜홀(wormhole) 얘기를 접했고, 빛의 통로를 길게 뻗어놓으면 아버지와 소통할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 신작을 시작했어요. 곧게 멀리 뻗어 가는 빛은 레이저 뿐, 보통의 빛은 퍼지는 속성이 있어 밀도 높으면서 굵은 빛줄기를 만드는 게 쉽지 않았어요.”
전시장에는 첼로 연주, 군중의 웅성거림 등을 조합해 작가가 직접 만든 음악이 잔잔히 흐른다. 울음 대신 택한 음악이다. 1층 전시장은 잡고 만질 수 없는 빛과 소리로 채워졌다. 2층으로 올라가면 빛과 그림자로 만든 가상의 계단이 벽을 따라 펼쳐진다. 그간 대형 공간, 미술관 전시를 통해 선보였던 작품이 1층과 3층 사이에 전시돼 무한한 확장감을 이룬다.
3층에는 눈부신 자개 작업들이 걸렸다. 리경은 지난 2014년 일본 도쿄 긴자의 에르메스에서 한국 작가로는 두 번째로 전시에 초대됐고,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자연채광을 받아들이고자 한쪽 벽 전체를 45㎝ 격자 창으로 설계한 것에 착안해 자개 바닥 설치작업을 선보였다. 빛에 가장 완벽하게 반응하는 재료가 자개라고 판단해, 남해안에서 생산된 자개를 1년에 걸쳐 4톤가량 모았다. 자개는 생산 지역과 계절에 따라 색깔 자체가 달라지기에 자개를 쌓는 일이 “시간을 채취해 쌓는 것”이라 생각하며 빛으로 시간을 담았다. 자신의 작업이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는 싸움”이라는 작가는 “전시장 1층에는 빛을, 2층에 공기, 3층에 시간을 담아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11월7일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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