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캐피탈의 신규 벤처회사 투자결정회의에는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하지 않는다. 임원들만 참석해 무기명 전자투표로 결정하고 CEO는 문자로 결과만 통보받는다. 인사권자인 CEO가 참석해 의견을 내면 임원이 좋든 싫든 따르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임원들의 자율적인 판단과 결정을 존중하는 차원으로 CEO는 투자의 큰 방향성을 결정하고 수익률 목표를 제시하는 수준에서 일을 관장한다.
지난해 3월 허영택 신한캐피탈 사장 취임 후 이 같은 신한캐피탈의 변화가 시작됐다. 현대캐피탈과 KB캐피탈·하나캐피탈 등 한국 주요 캐피털 회사들은 대부분 중고차와 할부리스 등 자동차 금융이 핵심이다. 하지만 신한캐피탈은 최근 신한카드에 1조원대 오토·리테일 금융자산을 넘기며 기업금융 부문에 더욱 집중하게 됐으며 벤처투자와 해외 대체투자 등으로도 발을 넓히고 있다.
허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글로벌투자은행(GIB) 그룹 내 벤처투자부를 신설해 지금까지 1,000여개의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 성장동력이 스타트업에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미 육성된 벤처뿐만 아니라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100여개의 신생기업에도 투자했다. 벤처투자 외에도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 투자에도 나섰다. 서울시가 역세권에 청년주택을 조성하면 브리지론을 실행하는 형태로, 신한캐피탈은 이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ESG 채권 2,000억원을 발행한다.
신한베트남의 주역이자 신한은행 글로벌사업그룹장 출신인 그는 해외투자에도 관심이 많다. 지난해 7월 글로벌영업부를 신설하고 해외 대체투자를 새로운 주요 사업부문으로 육성해 스페인의 폐기물 처리시설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e커머스 업체 부칼라팍 등에도 투자했다. 허 사장은 “더 넓은 세상을 봐야 한다”며 임원들을 중국·일본 등으로 출장 보내기도 했다. 허 사장은 본부장들의 권한을 강화하는 등 자율적이지만 책임감을 높이는 회사 분위기를 만드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무엇을 해라, 하지 말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환경을 조성해주고 직원들이 알아서 잘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또 대면보고와 보고자료를 줄이는 등 업무 효율화에 관심이 높아 서면 결재 대신 태블릿PC 등을 통해 대부분의 일들을 처리한다.
변화에 힘입어 신한캐피탈의 올해 상반기 순익은 847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9.6% 증가했다. 자산은 8조5,294억원으로 지난해 말 7조5,664억원보다 12.7% 늘었다. 허 사장은 “지금 당장은 벤처 투자를 통한 수익을 보기는 힘들지만, 몇 년 후면 회사가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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