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개 미복구 파일... ‘대통령비서실 보고 문서’ 포함
21일 감사원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부 A국장은 지난해 11월 월성 1호기 조기폐쇄에 대한 감사가 진행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부하 직원에게 컴퓨터와 휴대전화, e메일 등에 저장된 관련 자료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해당 직원은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에게 요청할 사항’ 등 총 444개의 파일을 지웠다. 이는 감사원이 이후 ‘월성 1호기와 관련된 최근 3년 간 내부 보고자료와 BH(청와대) 협의 및 보고자료, 한수원과 협의자료 일체’를 요구했지만 산업부가 문서 대부분을 누락한 배경이다.
감사원은 해당 산업부 직원의 업무용 컴퓨터를 확보, 포렌식을 통해 324개 파일은 복구했으나 나머지 120개는 끝내 복구에 실패해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산업부 직원이) 다른 내용으로 덮어씌우거나 파일명을 바꾸는 등 일부러 복구를 못 하게 하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삭제된 자료들이 얼마나 민감한 내용이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미복구 파일 가운데 청와대 보고 관련 자료가 있는 점도 주목된다. 감사원은 미복구 파일 가운데 ‘2018년 4월 3일 대통령비서실에 보고한 문서’가 포함된 것으로 파악했지만, 결국 해당 파일의 내용은 파악하지 못했다.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과정과 청와대와의 연관성에 대한 감사는 이뤄지지 못했다는 의미다.
실제 2018년 월성 1호기 폐쇄 결정 당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을 지낸 채희봉 가스공사 사장도 이번 감사 대상이었지만 관련 내용은 감사 결과에 포함되지 않았다. 자료삭제가 산업부 공무원의 자체 판단으로 이뤄졌는지도 규명 대상이다.
‘변양호 신드롬’ 또 재연 우려
자료 삭제가 산업부 공무원의 자체 판단으로 이뤄졌는지도 규명 대상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산업부 조직 차원, 또는 속칭 ‘윗선’에서 컴퓨터 등에 저장된 자료가 삭제됐다는 점을 인지했는지 여부 등이 쟁점이 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자료삭제 등에 대해 형사 고발할 예정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부당한 폐쇄 과정에서 감사를 방해하고 직권을 남용하고, 공용 서류를 손상한 관련 책임자를 모두 형사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국정과제 추진 과정에서 실무를 맡은 공무원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증거 인멸’까지 감수하며 책임을 뒤집어 써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번 감사원 감사는 결국 산업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탈원전’을 이행하면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이다.
관가에서는 이번 일로 공무원이 책임 소재에 휘말릴 수 있는 결정을 피하려는 소위 ‘변양호 신드롬’이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정부가 적극 행정에 따른 면책을 강조하지만 현실은 확연히 다르다” 면서 “누가 징계와 검찰 수사까지 무릎 쓰고 정권 차원의 국정 과제에 적극 나서려고 하겠느냐”고 강조했다. /세종=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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