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주춤했던 국내 은행들의 글로벌 사업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신한은행은 우리나라의 KOTRA 격인 홍콩무역발전국과 국내 은행 최초로 손을 잡았고 KB국민은행은 싱가포르 지점 설립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저금리와 각종 규제·성장둔화 등으로 한계에 부딪힌 국내 대신 해외시장에 눈을 돌린 금융사들은 코로나19에 따른 각종 제약을 넘기 위해 비대면 경영과 디지털 플랫폼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오는 28일 홍콩무역발전국과 한국 기업의 홍콩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업무제휴 협약(MOU)을 체결한다. ‘홍콩판 KOTRA’ 격인 홍콩무역발전국은 전 세계 50여곳에 지부를 두고 각국 기업의 홍콩 진출과 현지·중국 기업과의 사업 연결을 지원하는 준정부기관이다. 홍콩무역발전국이 지난 2017년 한국에 지부를 개설한 뒤 국내 은행과 손을 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라는 돌발 변수에도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과 현지 금융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높다”며 “홍콩·아시아 시장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과 초기부터 관계를 쌓으면 은행으로서도 아시아 전진기지인 홍콩 기업금융 시장에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홍콩은 최근 격화한 미중 간 마찰과 정치적 불안정성에도 글로벌 무역·금융 허브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중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서 기업들의 관심은 여전하다. 대중국 수출의 우회 기지인 홍콩은 우리나라 4대 수출 시장이자 지난해 무역흑자 1위국이다.
홍콩무역발전국이 신한은행과 손을 잡은 데는 스타트업 발굴·지원에 특화한 신한금융의 자체 투자금융 역량도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신한금융은 금융권 최초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인 ‘신한퓨처스랩’을 출범한 데 이어 최근 전문 벤처캐피털(VC)을 편입하며 스타트업 투자금융 밸류체인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홍콩을 비롯한 중국·마카오 등에서는 스타트업·바이오테크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에 대한 수요가 크다”며 “홍콩의 세제·금융·물류 혜택 등을 무기로 한국 기업을 진출시킬 유인이 홍콩에도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높아진 국경에도 직접 해외 네트워크 확대에 나선 은행들도 있다. KB국민은행은 다음 달 중 싱가포르 지점 설립 안건을 상정할 계획이다. 국민은행은 최근 싱가포르 금융통화청과 지점 설립에 관한 화상회의를 진행했고 이르면 내년 상반기 안에 인가를 받겠다는 목표다. 지난해 9월부터 현지에서 사전 작업을 다져온 결과다. 현재 국민은행은 국내 4대 은행 중 유일하게 싱가포르에 지점이 없다.
NH농협은행도 숙원이었던 중국 지점 설립에 결실을 맺고 있다. 농협은행은 8월 중국 금융당국에 베이징 지점 설립을 위한 예비인가 신청서를 접수해 내년 중 설립을 앞두고 있다. 중국 금융당국은 예비인가를 받을 때 이미 은행의 중국 진출 자격과 사업성 여부 등을 따져 판단하기 때문에 접수 자체가 지점 설립의 청신호로 여겨진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국민·농협은행은 국내 은행들 중에서도 해외 진출의 후발주자 격”이라며 “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의 금융사가 숨 고르기에 들어간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해외 네트워크 확대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이전보다 인력 교류가 어려워진 만큼 국내 은행들은 직접적인 현지 지점·점포 확대 대신 디지털 뱅킹 강화와 현지 디지털 플랫폼사와의 제휴에도 적극적이다. 우리은행의 경우 최근 브라질·필리핀 법인이 모바일뱅킹 플랫폼 신규 구축에 들어갔다. 우리은행은 올 상반기 주력 해외 네트워크인 베트남에서 ‘우리WON뱅킹 베트남’을 출시한 데 이어 방글라데시·인도·미국·영국 등 세계 8개국에서 동시에 ‘글로벌WON뱅킹’을 출시하며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비대면 거래 비중이 확대되고 있어 디지털 플랫폼을 현지 고객 중심으로 최적화하는 작업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고 말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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