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끝에 달린 작은 종을 우리는 ‘풍경’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부르지만 원래의 명칭은 방울을 뜻하는 탁(鐸)이다. 바람에 흔들려 소리가 난다하여 ‘풍탁(風鐸)’이라 불리던 것이 지금의 ‘풍경’으로 불리는데 사실 ‘경’이라는 음향구는 따로 있다.
우리나라의 풍탁은 이미 삼국시대 유적이나 유물에서 확인되며 글자가 새겨진 명문(銘文)이 있는 조선시대 풍탁들도 전해진다. 풍탁은 전각의 처마 끝에만 매달았던 것이 아니다. 건축물의 형태를 모방한 탑이나 사리장엄구의 지붕 처마에도 달았는데 크기가 1~2㎝ 정도로 매우 작은 것들도 있다. 금동으로 제작된 작은 풍탁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반사되는 빛과 맑은 소리는 전각과 탑을 시청각으로 부처에게 올려 장식하는 장엄(莊嚴)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풍탁은 소리를 내지만 범음구(梵音具)라기보다는 장엄구(莊嚴具)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범종이나 북처럼 사용자가 의도를 가지고 소리를 내는 것과는 다르게 풍탁은 사람이 소리를 제어할 수 없다. 바람에 의해 풍탁이 흔들리면 그 안에 있는 치게(혀처럼 생긴 탁설)가 몸통을 때려 소리가 나는 음향 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바람에도 잘 흔들릴 수 있도록 치게의 끝에 큰 바람판을 달기도 했다. 바람판은 기능적인 면 외에도 모양이 다양해서 풍탁의 장식적인 효과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풍탁은 바람에 의해 소리가 나기 때문에 소리가 나는 시점이나 소리의 크기를 조절할 수 없다. 계획적이지 않은 의외성이 바로 풍탁의 매력이다. 언제 들리지 모르는 풍탁의 소리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을 알리는 가을바람의 소리이기도 하다.
/박지영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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