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연이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시장의 ‘갭투자’가 다시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임대차3법 시행 이후 극도로 불안해진 전세 시장 탓에 전셋값이 크게 오르면서 매매가와의 격차가 크게 줄어들고 있어서다. 일부 비인기지역의 소형 평수 아파트에서는 전셋값이 매매가를 뛰어넘는 ‘역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빠르게 좁혀지는 매매-전세가 격차>
25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매매가-전세가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8단지래미안 전용 59.9㎡는 지난달 6억 6,900만원에 전세 거래됐다. 최근 매매가(9억3,200만원)와 비교하면 갭 차이는 2억 6,300만원이다. 지난 2월 매매가(8억5,000만원)와 전세가(4억5,000만원) 시세 차이가 4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격차가 1억3,700만원 줄어든 것이다.
서대문구에서도 인왕산현대 전용 59㎡가 지난 12일 4억 5,000만원에 전세 계약돼 매매가(7억 8,000만원 수준)와 격차가 3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해당 단지는 지난 6월부터 시세가 급등하면서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가 커졌지만, 최근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그 차이가 다시 줄었다.
경기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수원 권선구 LH센트럴타운3단지 전용 84㎡는 매매가가 5억8,000만원 수준인데, 지난달 거래된 전세 매물의 가격은 4억5,000만원이었다. 갭 차이는 1억3,000만원이다. 용인 기흥구에서는 금화마을3단지 주공그린빌 전용 59.97㎡의 전세 가격이 3억5,000만원으로, 매매가(3억9,800만원)와의 차이가 4,800만원까지 줄었다. 5,000만원만 있으면 경기에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셈이다.
아예 전셋값이 매매가를 뛰어 넘은 단지들도 포착되고 있다. 비선호 지역의 구축 소형 아파트들이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집을 살 수 있는 ‘무(無)갭’ 투자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 해태 전용 59.51㎡는 지난 9월 2억 8,000만원에 전세 계약돼 같은 기간 매매가(2억5,000만원)보다도 3,000만원 가량 높았다. 경기 안산 단원구 공작한양 전용 70㎡ 또한 지난달 전세 거래가(2억2,000만원)보다 8월 매매거래 가격(2억원)이 더 낮았다.
<커지는 갭투자 유혹…정부 대응 나설까>
매매가 상승폭이 주춤하는 사이 전세가가 훌쩍 뛰면서 시장의 ‘갭투자 유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각종 지표로 봐도 시장의 갭투자 증대 요인이 확인되고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서울의 전세가율은 53.6%로 8월(53.3%) 대비 0.3%포인트 상승했다. 경기도 아파트 전세가율 또한 같은 기간 68.7%에서 69.9%로 1.2%포인트 늘었다. 한동안 안정세를 보인 수도권의 전세가율이 전세가 급등으로 다시 반등하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정부의 강력한 대책으로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규제가 없다면 시장의 갭투자 대기 수요는 풍부한 상황이다. 국토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4월 투기과열지구 내 3억원 이상 ‘임대목적 거래’는 2만1,096건으로 전년 동기(9,386건) 대비 124.8%나 급증했다. 반면 본인 또는 가족의 실거주 목적 거래 비중은 지난해 66.8%에서 올해 56.2%로 줄어들었다.
‘임대목적 거래’ 자체에는 임대사업용 거래도 포함되지만, 정부가 등록 임대사업자에 대한 각종 세제혜택을 환수하는 등 새롭게 사업용 매매가 이뤄질 요인이 대폭 줄었기 때문에 이중 상당수는 갭투자로 추정된다.
서진형 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대한부동산학회장)는 이와 관련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에서 시가 15억원 이상 아파트에 대한 전면 대출금지를 내놓는 등 강도 높은 대출 규제가 나오면서 주택 매입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전세로 돌아서게 됐다”며 “전세 수요가 증가하다보니 전셋값이 오르고, 전셋값 상승에 자극받은 사람들이 갭투자를 재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갭투자 재점화 가능성을 조기 차단하기 위해 전세 시장 안정 대책을 이르면 이번주 중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월세 세액공제 확대,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신규계약에 대한 전월세 상한제 도입, 표준임대료의 조기도입 같은 ‘강경책’은 이번에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권혁준기자 awlkw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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