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는 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온 이동통신사가 인증시장 확대를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포석을 쌓고 있다고 반발한다. 새 본인확인기관에 도전장을 던진 토스를 견제하는 한편 이통3사의 자체 인증 애플리케이션인 ‘패스(PASS)’의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정부가 관리 감독하는 본인확인 시장의 혼란이 커지는 사이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던 방송통신위원회도 뒤늦게 실태 확인에 나섰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지난달 토스페이먼츠와 맺고 있던 휴대폰 본인확인 서비스 계약에 돌연 문제를 제기했다. 이 계약이 이대로 내년 6월 종료되면 현재 토스페이먼츠를 통해 SK텔레콤 휴대폰 본인확인을 제공하고 있는 가맹점들은 더이상 이 서비스를 쓰지 못하게 된다. 토스페이먼츠가 제공하는 PG 서비스와 SK텔레콤 휴대폰 본인확인 서비스를 함께 쓰고 있는 가맹점은 LG전자·현대자동차·부동산114 등 대형 업체를 포함해 온라인쇼핑몰 같은 소규모 업체도 수만곳에 이른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들 사이트에서 본인확인이 꼭 필요할 때 SK텔레콤 휴대폰으로는 본인확인을 할 수 없게 된다.
아직 정식 계약기간 만료 전이지만 이미 8월 이후로 토스페이먼츠의 신규 가맹점들은 SK텔레콤 휴대폰 본인확인 서비스를 쓸 수 없는 상태다. 해당 가맹사 관계자는 “가입자가 많은 SK텔레콤의 본인확인이 빠지면 소비자도 불편이 크다”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가맹점이 서비스 계약을 다시 체결하고 시스템도 별도로 개발해야 해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고 토로했다.
SK텔레콤은 중간에 대행사를 낀 계약 형태상 관리가 어렵고 개인정보 유출 등의 리스크가 우려돼 신규 계약을 불허한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토스페이먼츠는 SK텔레콤의 인증대행사 한국모바일인증과 계약을 맺고 가맹점들에 휴대폰 본인확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본인확인이 한번 이뤄질 때마다 고객 정보가 거쳐야 할 기관이 한 단계 늘어난 셈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토스페이먼츠가 공식적으로 SK텔레콤에 직접 계약을 요청한 적이 없다”며 “제안을 해오면 절차와 원칙에 따라 검토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스타트업 업계의 한 관계자는 “SK텔레콤 측이 패스앱 활성화 방안을 요구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SK텔레콤의 행보가 인증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지키기 위한 ‘견제구’라고 보고 있다. 앞서 토스는 지난달 네이버·카카오와 함께 방통위에 신규 본인확인기관 지정심사를 신청했다. 방통위가 지정하는 본인확인기관이 되면 토스도 이통사·신용평가사 등의 본인확인 서비스를 이용할 필요 없이 직접 서비스를 만들어 쓸 수 있게 된다. 2017년 카드사가 신규 본인확인기관이 됐을 때는 휴대폰 중심의 인증시장 구조를 깨지 못했지만 이미 거대 플랫폼과 편의성을 갖춘 이들 기업의 등장은 이통사에도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 토스는 이미 본인확인기관 지위를 갖고 있는 SCI평가정보의 유력 인수자로도 꼽힌다.
이통사 사정에 밝은 핀테크 업계의 한 관계자는 “토스를 미래 경쟁자로 보고 현재의 우월적 지위를 바탕으로 협상을 어렵게 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며 “이통사는 단순 사업자가 아니라 정부가 독점적 권한을 부여한 기관인 만큼 자의적인 계약 변경은 휴대폰 본인확인을 쓰는 소비자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SK텔레콤 관계자는 “토스의 본인확인기관 지정 움직임과 연계해 부당하게 서비스를 중단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도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연말 공인인증서 폐지에 따른 사설인증시장 확대를 앞두고 이통3사가 문자인증 대신 ‘패스앱 몰아주기’를 시도한다는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다. 이통3사는 앞서 문자인증(소켓방식) 비용을 일제히 올리며 가맹점의 패스앱 활성화를 유도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최근에는 대행사를 통해 소켓방식 제공을 허용하되 문자인증 화면(UI)에도 패스앱 로고를 반드시 노출해야 한다는 방침을 가맹점에 전달했다. 대행사들은 지난해 소켓방식 인증을 아예 중단한다고 통보했다가 논란이 되자 입장을 바꿨다.
특히 이통사·대행사들은 이 과정에서 ‘소켓방식의 보안을 강화하라’는 방통위의 권고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방통위는 “권고일 뿐 강제한 적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통사에 ‘을’인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본인확인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방통위가 묵인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불만이 높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관계자는 “가맹점이 스스로 구현한 인증창에서 간편하게 문자인증을 할 수 있게 하는 소켓방식과 달리 표준창 방식은 기본값을 패스 앱으로 설정해 진입을 유도하고 인증 단계를 늘린다”며 “소비자 편익과 선택권 강화를 위해 인증시장 진입을 낮춘다는 취지와는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통사가 보안을 명분으로 방통위의 입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23일 국정감사에서 “(패스앱 몰아주기)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통신사의 시장 지배력 남용 주장에 대해) 방통위 소관 업무인지 확인한 후 공정거래위원회와 협의해보겠다”고 말했다.
/빈난새·오지현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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