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위에서 본 제주의 풍경이 바로 황금빛이었다. 나도 그때까지 제주라고 하면 푸름을 떠올렸는데, 석양에 물든 바다나 땅이 모두 황금색을 변할 때, 풍요로움을 뛰어넘어 경외감까지 느껴졌다. 노란색은 굉장히 화려한 색이다. 화려한 색으로 우리 정서를 표현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나에게는 숙명이었다”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관통하는 화가 변시지(1926~2013)가 지난 2008년 인터뷰를 통해 밝힌 황금빛 제주 풍광의 이유다. 제주 태생으로 1931년에 가족의 이주로 일본에서 성장한 변시지는 조선인으로서 일본을 뛰어넘은 극일(克日) 사연의 주인공이다. 하나는 소학교 2학년 시절, 교내 씨름대회에서 동급생들을 모조리 제압하니 일본인 선생이 덩치 큰 상급생과 대결하게 했던 일이다. 당시 다리를 다친 변시지는 신체적 장애를 화가의 꿈으로 풀어낸다. 서양 근대미술을 익힌 그는 1948년, 일본 최고의 중앙 화단인 ‘광풍회전(光風會展)’에서 조선인으로서 이례적으로 최고상을 받았다. 23세에 이룬 최연소 최고상, 24세의 광풍회 심사위원 경력은 이후 그 어떤 일본인도 깨지 못했다.
이후 1957년에 서울대 교수로 초빙돼 고국으로 돌아온 변시지는 한국의 아름다움에 눈떴다. 창덕궁 비원(秘苑)을 중심으로 작업한 당시 작품들은 밝고 섬세한 푸른 톤이 특징이다. 그러다 50년 만에 고향 제주로 이후 귀향하면서 화풍이 급변한다. 과거 일제는 3·1 운동 이후 ‘문화정치’를 표방하며 조선을 존중하는 척 탄압했는데, 그 중 하나가 왜곡된 향토색 정책이었다.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조선미술전람회(鮮展)을 통해 나무를 가꾸지 않아 흙이 다 드러난 민둥산, 피폐한 농촌의 분위기를 마치 한국적 풍광인 양 주입했던 것. 그러나 변시지는 “화려한 색으로 우리 정서를 표현”하는 숙명을 제주에서 발견했다. 그런 변시지의 전성기 작품 40여 점을 엄선한 ‘변시지, 시대의 빛과 바람’이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공익재단법인 아트시지와 가나아트가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다.
전시장은 작품이 내뿜는 황금빛으로 화사하다. ‘장판지색’ ‘흙빛’ ‘제주 농부의 갈옷 빛’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 황색과 검은 선 만으로 이룬 그림들이다. 전시 서문을 쓴 송정희 공간누보 대표는 “작가는 ‘하늘의 색은 검고 땅의 색은 누렇다’는 말을 빌어 와 황토 빛을 생명의 색으로 삼았고 검은색을 이용한 수묵화적 기법을 서양화 기법과 융합시켰다”면서 “이를 통해 인간의 궁극적인 고독, 저항정신, 자연에 대한 성찰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바람의 섬 제주라고 하나, 그림 속에는 유난히 바람이 많다. 생전의 변시지는 “제주도 자체가 역사적으로 고통의 땅”이었다며 “거센 파도는 실경이 아니라 창작의 산물이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에 대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머리를 들지 못하고,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몰아치는 바람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관람객의 가슴까지 와 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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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섬과 초가집, 까마귀와 조랑말 등 단순한 제주적 소재로 삼라만상의 이치를 풀어놓는다. 안온하나 답답한 집으로 향하는 길과 풍랑이 위험하나 드넓은 바다로 향하는 갈림길에 선 남자는 인간의 근원적 질문과 마주한 셈이다. 해 솟은 일출봉으로 가야 하건만 돌담에 가로막혔거나, 부러질 듯 휜 소나무가 해를 향하는 그림 등은 정치적 해석까지 가능할 정도로 함축적이다. 전시는 11월15일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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