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역기구(WTO) 차기 사무총장 선호도 조사에서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후보에게 1위를 내줬지만 정부는 선거전을 계속 이어나갈 방침을 밝혔다. 우리 측은 표결이 아닌 컨센서스(일치합의)를 이뤄야 하는 선거 방식에 기대를 걸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29일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유 본부장이 오늘이나 내일 사퇴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전날 외교부는 제네바에서 소집된 WTO 회원국 대사급 회의에서 오콘조-이웰라 후보가 사무총장 선출 결선 라운드에서 다 많은 득표를 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외신에 따르면 유 후보는 전체 164개 WTO 회원국으로부터 64표 내외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BBC는 오콘조-이웰라 후보가 아프리카연합(AU) 41개국, 유럽연합(EU) 27개국을 포함해 과반(83개국)을 훨씬 넘는 104개국의 지지를 받았고 유 본부장은 60개국이 지지했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조사 결과를 통보받은 대로 관계부처 회의를 열어 향후 대응을 논의했다.
미국은 결선 선호도 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유 본부장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키스 록웰 WTO 대변인은 28일 현지시각 3시 WTO 본부에서 열린 전체 회원국 대사급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한 대표단이 (회의에서) 오콘조이웨알라의 입후보를 지지할 수 없으며 계속해서 한국의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대표단은 미국이었다”고 밝혔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은 곧바로 차기 사무총장으로 유 본부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USTR은 “유 본부장은 성공적인 통상 협상가와 무역정책 입안자로서 25년간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진정한 통상 전문가”라며 “이 조직의 효과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기량을 갖췄다”라고 평가했다.
USTR은 또 “WTO는 중대한 개혁이 매우 필요하다”며 “현장에서 직접 해본 경험이 있는 누군가가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거부권이 중요한 것은 WTO 사무총장 선거가 표결이 아닌 ‘일치합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WTO는 지금까지 7번의 사무총장 선거에서 모두 합의를 통해 사무총장을 선출했다. 유 본부장이 사퇴하지 않고 ‘버티기’ 전략을 사용할 수 있는 배경인 셈이다.
특히 미국이 유 본부장을 지지하고 중국이 오콘조-이웰라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무총장 선거가 미중 양국 간의 대리전 양상도 띄고 있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강대국이 특정 후보를 반대할 경우 컨센서스를 도출하기 어려운 구조도 변수다.
만약 회원국들이 두 후보 간에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전반기와 후반기 사무총장을 나누는 등의 합의안이 도출될 수도 있다.
지난 1999년 사무총장 선거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마이크 무어 전 뉴질랜드 총리와 수파차이 파니치팍디 전 태국 부총리가 각각 선진국과 후진국의 표를 나눠먹으면서 막판까지 경합했다. 이에 두 후보 측이 합의하지 못하면서 사무총장 임기를 6년으로 늘리고 마이크 무어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수파차이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각각 3년씩 나눠 맡기도 했다.
/김인엽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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